2020.11.23 03:03

포텐 촉한의 방패. 왕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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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평.jpg 촉한의 방패. 왕평
왕평(王平). 자는 자균(子均)으로 파서(巴西) 탕거(宕渠) 사람이다. 유비 사후의 촉한에서 마충, 등지, 진도 등과 함께 국경을 책임진 핵심장수 중에 하나였다. 항장 출신이지만 가정 전투에서 장합을 물러가게 한 공이 있어 그 때부터 제갈량의 중용을 받았다. 위연이 창이라면 왕평은 방패였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1. 촉한으로 가다


왕평은 어릴 적 부모를 잃어 자신의 외가인 하(何)씨 집안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때문에 하평(何平)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다시 본래의 성인 왕평으로 돌아온다. 


왕평은 두호(杜濩)와 박호(朴胡)를 따라 낙양으로 들어가 조조에게 투항하였고, 가교위(假校尉)가 되었다.

이 시기에 대해서 <왕평전>에서는 기술하지 않았으나, <무제(조조)기>를 따라가면 그 시점이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다.


215년 9월, 파군(巴郡)의 7성(七姓)주 이왕(夷王) 박호(朴胡), 종읍후(賨邑侯) 두호(杜濩)가 파군의 이(夷)족, 종민(賨民, 이민족)을 들어 내부해왔다.

<무제기>


파군.jpg 촉한의 방패. 왕평

(파군은 엄안이 장비를 막았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코에이 삼국지의 영안성 일대. 출처는.. 김두영씨?)


이후 조조를 따라 종군하여 한중을 정벌하였다고 하는데, 


- 왕평이 조조에게 항복한 것은 215년 9월

- 조조가 장로의 항복을 받은 것은 같은해 11월, 장합을 파견해 촉의 경계를 침입

- 다음달 12월에 조조는 하후연을 남겨놓고 남정으로 회군

- 216년 2월에는 조조가 업으로 귀환

- 218년, 유비가 제장들을 이끌고 한중을 공격


모두 <무제기><선주전>의 기록으로 당시 신인이고 직급이 교위인 왕평이 뭘 했는지 당연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그가 한중의 장로 토벌에 종군한 것인지, 유비와의 한중 공방전에 투입이 된 것인지 둘 다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항복한 곳이 촉한이니까 높은 가능성을 두어 둘 다라고 추측할 수는 있겠다. (그래도 사실인냥 단언하긴 좀 그렇다.)


정사에서는 그냥 촉한에 투항했다고 기술했고 <삼국지연의>에서는 서황과 반목하여 투항한 것으로 그렸지만 왕평의 위치상 서황과 반목이라도 해볼 만한 짬이 되지 않았을거고, 만약 반목했다면 목이 없는 채로 촉한에 투항했을 것이다.


2. 진가가 드러나다


228년, 왕평은 제갈량의 첫 북벌에 종군하면서 정사에 다시 등장한다.


(불쌍한 마속은 여기서 또 등장해야만 한다.) 제갈량은 상규현 서쪽을 평정하기 위해 마속을 가정으로 파견해 위나라 지원군이 찾아오는 길목을 지키도록 명했다.

왕평은 마속의 부장으로 임명되어 따라간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왕평에게 평소 꼼꼼하다는 이유를 들어 마속을 보좌하도록 했다고 서술되었지만, 그런 기록은 없다. 그냥 운좋게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마속은 잘 알듯이 물을 버리고 산으로 등산했다. 왕평은 그 지형이 행동하기에 번잡하여 마속에게 규간(規諫, 옳음을 간함)했지만 마속은 이를 듣지 않았고 결국 장합에게 크게 패했다. 오로지 왕평이 거느리고 있던 1,000명의 군대는 질서 정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북을 울렸다.

장합은 그곳에 복병이 있을까 두려워 더 접근하지 못하였다. 제갈량의 퇴각 명령을 받은 왕평은 흩어졌던 군사들을 거두어 회군했다.


<삼국지연의>처럼 왕평이 마속과 의견이 달라 군대를 나누어 따로 주둔했던 것은 사실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다만 왕평은 가정을 바로 지원할 수 있고 엄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 정도는 사실로 보여진다. 장비 사후 장합은 자신의 상대가 없을거라 생각했겠지만 의외의 곳에서 자신의 담당을 만나게 된 셈.


제갈량은 마속을 참하고 장휴(張休), 이성(李盛)을 주벌(誅罰, 꾸짖고 벌을 내림)하였고 장군 황습(黃襲)등의 병사를 박탈하였으며, 자신과 조운의 관직을 스스로 강등시켰다. 하지만 유일하게 왕평은 그 공적을 인정받아 마속의 자리를 대신해 참군(參軍)으로 임명했으며 오부(五部)를 통솔하게 하였고 토구장군(討寇將軍)의 작위로 승진시키고 정후(亭侯)에 봉하였다.


구(寇)라는 단어는 오랑캐, 이민족의 뜻도 있지만 원수로 의미되기도 한다. 즉, 원수인 위나라를 토벌하는 잡호장군 일 수도 있다.


(오부五部는 남중의 정예군을 뽑은 속칭 '무당비군'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수장인 무당감으로 임명된 것https://www.fmkorea.com/3203734087, 참조)

등갑병.jpg 촉한의 방패. 왕평
(실제로 무당비군이 남만병사와 같은 장비를 하고 싸웠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남중에서 병사로 쓸만한 자들을 선발해 한족처럼 무장했을 가능성도 없다고 하진 못한다. 따로 무당비군이라는 이름이 생긴것을 보면 보통병사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3. 장합을 또 막아내다


제갈량은 첫 북벌 이후 매 해 위나라 농서의 변경을 침공하였는데, 왕평은 231년의 북벌에 다시 등장한다. 제갈량은 군대를 몰고 기산으로 가 포위하고 왕평을 포위군의 남부에 주둔시켰다. 이는 포위군이 외부의 역격을 받아 반대로 포위형태가 되었을 때 구원시키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추측은 된다. 


<한진춘추>에서는 제갈량과 사마의가 상규의 동쪽에서 조우했다고 서술되어있는데, 사마의는 굳건히 수비만 할 뿐 응전하지 않자 장합을 비롯한 제장들이 농서의 민심을 잃지 않으려면 나가서 싸워 이겨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청한다. 결국 사마의는 제장들의 성화를 못이겨 자신은 직접 제갈량을 상대하기 위해 출정하고 장합은 왕평에게 보낸다.


제갈량은 위연 등을 보내 사마의의 본대를 물리쳤고, 왕평은 굳게 지키고 움직이지 않아 장합이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4차북벌.png 촉한의 방패. 왕평
(<진서>에서 인용한 <한진춘추> 내용으로 추측된 당시 전황. <진서>선제(사마의)에게 우호적인 기술을 한 사서임을 알아두자. 상규현성의 동쪽에서 서로 마주쳤다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4. 위연의 난


234년, 왕평은 제갈량의 마지막 북벌에도 참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제갈량이 오장원으로 진출했을 때 정사에서 왕평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제갈량의 사후 수습 과정에서 위연을 막아선 것을 보면 따라나선 것은 맞아 보인다. 


위연이 무서운 속도로 행군해 양의의 군대보다 앞서 지나 남곡구(南谷口, 포곡의 남부)의 모든 잔도를 끊고 양의를 위협한다. 이에 양의는 왕평을 보내 위연과 대치한다. 왕평은 위연의 군사들을 꾸짖는다. (위연편에서 이미 서술한 내용이다.)


왕평.jpg 촉한의 방패. 왕평
"공(公, 제갈량)이 죽어 그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너희 놈들이 감히 이처럼 구느냐!"

왕평의 말을 들은 위연의 병사들은 혼란해지고 흩어졌다. 위연은 한중으로 도망했지만 마대에게 결국 참수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위연의 난을 진압하는데에 마대의 공을 더 높게 추켜세워 주었다. 사실 마대가 위연을 잡아 참수했으니 아예 틀린 것은 아니나 왕평이 위연의 군대를 말 한마디로 분해시켜버린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왕평이 당시 촉한의 군영에서 입지가 그리 낮지 않았다는 반증도 되겠다.


왕평은 위연을 진압한 공로로 후전군(後典軍) 안한장군(安漢將軍)이 되었고, 거기장군(車騎將軍) 오일(吳壹)을 보좌하여 한중에 주둔하였으며 위연의 직위를 이어받아 한중태수(漢中太守)를 겸하였다. 오일이 죽고 나서는 그를 대신해 독한중(督漢中, 한중도독)이 되어 한중을 총감독 하고 방어하기 시작했다. 안한후(安漢侯)의 작위도 내려졌다.


장완이 대장군으로 한중의 면양(沔陽)에 주둔하자, 왕평은 장완의 대장군부 일을 도맡았다. 장완이 병환을 얻어 부현(涪縣)으로 돌아가니, 왕평은 다시 진북대장군(鎭北大將軍, 잡호장군인 진북장군 중 그 권위를 높여주기 위해 앞에 대大를 붙여주었다.)이 되어 한중을 통솔하게 된다.


5. 흥세전투(興勢之戰)


<삼국지연의>에는 그 내용이 빠져 있어 많은 사람들은 이 전투에 대해 모르기도 하지만 동원된 군대의 규모가 적지 않고 왕평이 한중독으로 완벽에 가까운 수비를 해 낸 전투이므로 왕평을 말함에 있어서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다.


244년, 조진의 아들이자 위나라의 대장군 조상은 사마의의 만류에도 불구, 10만의 군대를 이끌고 하후현, 사마소 등과 함께 한중을 향해 진격했다. 한중에서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조상의 선봉이 낙곡(駱谷)으로 들어오고 있을 정도로 급박했다. 당시 한중을 지키던 병사는 3만명도 채 되지 못했다.


<조상전>에 따르면 조상이 6~7만의 대군으로 장안에 집결해 한중으로 진격했다고 전했고, <곽회전>에서는 244년 촉을 정벌할 때 군사를 지휘하여 선봉이 되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때문에 수많은 블로그와 위키에서는 곽회가 <왕평전>의 조상군 10만 중 3만을 이끌고 자신의 임지였던 상규에서 기산을 따라 양평관을 공격한 것 처럼 서술했다. 상규에서 기산을 통해 진군했다는 추측은 신빙성이 있다. 하지만 곽회군의 규모는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정사의 기록은 대체로 열전의 주인공에게 친절하고 우호적이다. 때문에 <왕평전>에서는 그 승리를 더 키우기 위해 조상의 군대를 10만으로 말하고 <조상전>에서는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6~7만이라 했을 가능성도 없다고는 못한다.) 


거기에 하후패가 자오도를 따라 진격한 것 처럼 서술하는 블로그도 보이는데, 하후패가 이 흥세전투에 참전했다는 직접적인 정사기록은 없다. 하후패는 훨씬 이전인 230년에 조진을 따라 자오도로 종군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촉한 토벌군에 소속되어 서쪽으로 갔다는 기술이 있으니 참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토벌군이라 해서 반드시 공세라고 보기에도 난해하다. 침입한 촉군을 토벌하는 의미일수도 있으므로, 추측은 할 지언정 정의할 수는 없다.)


기본.png 촉한의 방패. 왕평

(제갈량이 북벌에서 자주 애용했던 '포야도'는 위연이 난을 일으키며 양의의 군대를 막기 위해 남곡구의 잔도를 모두 태웠고 제갈량 사후에 북벌이 미진했기 때문에 복구하지 않아 조상이 낙곡도로 진격하게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낙곡도는 당락도라고 더 많이 불린다.)


잡설이 길었다. 아무튼 한중의 제장들은 성도에서 비의가 양평관 방향으로 구원병을 보냈으니 한성과 낙성에서 수비를 하며 버티자고 의견을 낸다.


중국 신하.jpg 촉한의 방패. 왕평
"지금 힘이 부족한데 적을 막아야 하니, 마땅히 한성(漢城)과 낙성(樂城)을 굳게 지키고 도적(위군)들을 만나면 깊이 들어오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는 사이에 부현(涪縣)의 군대가 양평관(陽平關)을 족히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평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왕평.jpg 촉한의 방패. 왕평
"그렇지 않소, 한중(漢中)에서 부현(涪縣)까지 가면 거의 1천리요. 도적들이 만약 양평관을 얻는다면 곧 화(禍)가 되는 것이오. 이제 의당 유호군(劉護軍)과 두참군(杜參軍)을 먼저 보내어 흥세산(興勢山)을 점거하게 하고 평(平, 왕평이 자신을 낮추어 하는 말)은 뒤에서 막을 터이니 만약 적이 군사를 나누어 황금곡(黃金谷)으로 향하면 평이 1천명을 거느리고 내려가 그들을 맞아 싸우겠소. 이러는 사이에 부현의 군대가 도착 할 것이니 이것이 계책의 으뜸이오."


왕평은 고지대에 병력을 배치하고 한천(漢川)의 험준한 지세를 이용한 지속 가능한 방어전을 통해 비의의 대군이 구원할 때 까지 시간을 벌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마속더러 나쁘다 하더니 마속처럼 등산시킨다. 물론 가정이랑 낙곡도는 다르긴 하다.)


이에 조상의 대군은 흥세산으로 파견된 촉장 유민(劉敏)의 군대과 대치한다. 하지만 진령산맥은 제갈량도 버거워 했는데 조상 같은 레벨의 인물이 감당해 낼 산이 아니었다. 이 해에 관중과 강족들이 조상의 대군에 군수품과 군량을 대지 못했다.

왕평은 야간에 조상의 군영을 기습한다. 사마소는 군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위군의 진격이 계속 저지되어 시간이 끌리자, 비의의 지원군이 한중에 도착했다. 비의는 낙곡도의 심령, 아령, 분수령을 점거하여 위군의 보급로와 퇴각로를 차단했다.


조상의 군영은 혼란해졌다. 참모들마저 진퇴에 대해 의견이 갈려 논쟁이 오갔다. 하후현이 사마의의 편지를 받는다. 사마의는 무제(조조)도 못한 일을 조상이 무리해서 하려 한다고 말하며 퇴각할 것을 권했다. 하후현이 이를 조상에게 알렸다. 조상은 결국 전군에 퇴각을 명한다.

조상은 비의의 차단로를 겨우겨우 뚫고 지나갈 수 있었다. 수많은 소와 말이 죽어나갔고, 군량을 수송하던 자들 대부분이 죽거나 실종되어 주변 강족과 호인들의 원망은 하늘을 찔렀고, 관서지방이 거의 텅텅 빌 지경에 이르렀다.


한편 양평관 방면으로 진격했다고 추측되는 곽회는 조상의 군대가 낙곡도를 돌파하지 못하자 불리하다고 여겨 별다른 피해 없이 회군한다.


2.png 촉한의 방패. 왕평
(여담으로 한중으로 수송할 때, 유일하게 피해가 없었다고 정사에서 말하는 인물은 수송의 명장 '두기'다.)


흥세전투의 결과는 촉한의 승리였다. 조상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전멸에 가깝다고 확정할 만한 사료는 없다. '관서지방이 텅텅 빌 정도였다'의 서술 정도. 거기에 위군 수뇌부나 장수들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 과연 전멸에 가까웠을까라는 의구심은 든다. 다만 낙곡도는 진퇴가 그리 용이한 도로가 아니니 피해는 적지 않았을 것이다.


왕평은 한중의 중요거점을 이용해 어찌보면 촉한의 첫번째 위기를 무난하게 넘긴 셈이 되었다. 위군의 피해가 컸음에도 비의는 역공세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왕평이 사용했던 이 방어전략은 강유가 대장군이 되면서 (강유편을 참조하면 좋다.) 공세를 위한 방어전략으로 수정된다.


6. 낙곡대전?


사실 이 말을 하면 작성자 글의 댓글창이 전쟁터로 불거질까 매우 두려웠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성자가 어떻게 말을 할지 지켜보는 펨코의 삼국지 지식인들의 눈초리가 느껴진다.


위에 기술한 흥세전투는 국내에서 낙곡대전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중,일 해외사이트에서 낙곡대전으로 검색하면 흥세전투를 찾기 힘들다. 작성자도 이 어원이 궁금해 여러곳을 찾아봤지만 결국 나무위키에서 말하는 '2012년에 엔하위키에서 갑자기 낙곡대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는 것 말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국에서는 '흥세의 전투' , 일본에서는 '흥세의 역', 영어로는 'Battle of Xingshi'로 불린다. 즉 '낙곡대전'이라는 용어는 국내 한정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전(大戰)은 사전적으로 '커다란 전투'를 말하고, 일반적으로 그 앞에 전투가 벌어진 시점이나 지역을 붙여 명명한다. 주로 국내에서 많이 사용되고 일본도 좀 사용하지만 일반적으로 ~역 같은 표현을 쓰고, 중국에서는 ~전투라고 말하는 경우가 잦다.

(여담 : 영어로 a great war는 1차 세계대전을 지칭한다. ~대첩 이라는 표현과 구분하자. 대첩은 '아군이 크게 이긴 상황'을 강조할 때 붙인다.)


이를테면, 이릉대전은 국외에서 '효정전투' '의도군의 역'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는 것. 정사나 그의 주석, 후한서, 진서 등에도 대전이라는 표현은 큰 전투를 표현할 때나 쓰이지 고유명사처럼 지역과 합쳐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지역을 붙이면 ~之戰 이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아무튼 흥세전투를 낙곡대전이라 부풀려 말한다고 비판하고 논쟁하는 것을 삼국지 관련 자료를 찾다보면 굉장히 많은것을 볼 수 있다.


대전(大戰)은 어떨 때 붙여야 하는걸까? 그 학술적 기준의 근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는사람 있는가? 있으면 자세히 설명해주면 좋을듯.)

흔히들 삼국지의 3대 대전은 관도, 적벽, 이릉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을 3대 대전이라고 인정한 기준이 무엇인가? 모른다.


그럼 나름대로 기준을 짜 보자. 


1. 대전은 그 규모가 당대에 굉장히 커서 사상 초유의 병력이 격돌해야 한다.

2. 규모 뿐만 아니라 전투의 결과가 각 나라에 지대한 영향이 있어야 한다.


이정도면 그 기준 괜찮지 않은가?


그럼 조조와 원소의 관도대전을 살펴보자.

조조군은 앞서 순유편에서 말했다시피 관도에 주둔할 당시 군대가 1만이 채 되지도 못했고 2~3할이 부상했다.

원소군은 정사에서 조조군의 10배라고 말하고 있으니 약 10만의 군대다. (물론 배송지는 1만은 좀 심하게 적다고 말했다.)

관도에서의 전투는 조조의 하북 패권을 장악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따라서 나름대로의 기준에 매우 부합한다.


그럼 조조와 유비,손권연합군의 적벽대전을 살펴보자.

주유편에서 작성자는 조조군이 많이 쳐줘서 20~30만이라고 말했다. 유비, 손권 연합군은 도합 5만이었다.

적벽에서의 전투는 손권과 유비세력의 존속과 조조의 천하통일을 다투었던 전투로 그 결과가 삼국정립으로까지 이어진 중요한 전투니까 대전이라는 기준에 부합한다.


유비와 손권의 이릉대전을 살펴보자.

유비군영의 군대 5만, 무릉만이, 황권 수군 등을 도합해 최대 10만과 육손의 오군은 5만이다.

이릉대전은 그 결과로 인해 촉한의 형주 점유 실패로 북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손권이 결국 형주를 점령해 1강2약 구도가 정립되었다는 평가를 들어 역시 대전이라는 나름의 기준에 부합한다.


그럼 흥세전투를 보자.

조상군의 10만, 왕평군의 3만 역시 대군이 격돌했음은 맞다.

흥세전투는 그 결과가 조상의 실각으로 이어졌고 촉한의 조기 멸망을 막았다고 평가하는 의견이 있다. 위나라가 20년간 촉을 공격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그때는 흥세전투의 영향보다는 사마씨 일가의 정권장악으로 인한 내부분열이 더 컸다고 본다. 


펨붕이들도 느꼈겠지만, 뭐라 말하기 어렵게 애매하다. 그래서 작성자가 내리는 결론은

'편의를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게 무슨 죽일놈의 큰 문제겠나, 단지 한국에서만 쓰는 용어이니 왠만하면 지양하는게 좋지 않겠나.' 이다.


괜히 이런걸로 시비붙이고 싸우지 말자. 


대전(大戰)에 대한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할 근거가 있다면 이 논란 또한 사그러질 것이다.


7. 죽음과 평가


왕평은 연희11년(248년)에 죽은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244년의 흥세전투 이후 4년 뒤 인데 이때의 행적은 기록된 바 없다. 아들 왕훈이 왕평의 뒤를 이었다. 왕평이 맡던 독한중은 호제가 이어받았다.


왕평은 군대에서 자라 손으로 글씨를 쓰지 못하였고 아는 글자도 10자를 넘지 못하니 입으로 말한 것을 다른 사람이 적게 하여 글을 지었는데 모두 조리 있었다. 사람을 시켜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의 여러 본기(本紀)와 열전(列傳)을 읽게 하고 이를 들었는데 그 대의(大義)를 모두 알았고 종종 논하여 말할 때는 그 요지를 잃지 아니하였다.

<왕평전>


글을 잘 모름에도 사람을 시켜 책을 읽고 그 뜻을 모두 깨우쳤다는 이야기다. 인생은 실전이고 경험이지만, 모든 사람이 모든 상황의 경험을 평생동안 다 해볼 수 없다. (펨붕이들도 여자친구에 대해서 경험이 없지 않나?ㅋ) 때문에 문자를 알고 선대의 지식과 경험을 서적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왕평은 글을 모름에도 그것을 해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


행동은 법도를 지키고 말은 농지꺼리를 하지 아니하였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르게 앉아 하루를 보내니 정숙하여 무장(武將)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성격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말하니 사람들이 자신를 깔본다 여기게 되어 이 때문에 명예가 깎이게 되었다.

<왕평전>


농담따위 일삼지 않는 선비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기술이다. 다만 성격이 직설적이어서 주변인들에게 뒷담화를 좀 들었던 인물 같다.


왕평은 항장 출신으로 촉한의 가장 중요한 핵심 거점인 한중을 감독하며 든든한 방패가 되어준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평가는 펨붕이들의 자유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은 글쓴이에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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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예고
이 때 조비가 오관장(五官將)이 되었고, 임치후 조식은 재주와 이름이 한창 융성하여, 각자 추종하는 무리(黨與)가 있었고, 후계자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의론이 있었다. 조비가 사람을 시켜 ●●에게 자신을 굳건히 지키는 방법을 묻자 ●●가 

"원컨대 장군께서는 덕과 도량을 널리 존숭하시고, 몸소 선비의 본업을 지니시고,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하시어, 자식 된 도리를 어기지 마십시오. 이와 같이 하시면 됩니다."

<●●전>
  • [레벨:5]에차리 2020.11.23 09:45
    왕평 문맹 관련해선 배움에 노력을 안한것도 아닌데 문맹인게 난독증이 아니였나 하는 설이 있더군요
  • [레벨:26]오리군 2020.11.23 09:50
    왕평이 까막눈이었구나.. 예전부터 왕평이 숨겨진(?) 명장이라는데 코에이에서 네임드화는 커녕 걍 평범하게 만들어서 아쉬움
  • [레벨:12]파란클럽 2020.11.23 13:27
    오리군 A급 명장임 그래도 버프 상당히 잘됨
  • [레벨:22]화소연영 2020.11.23 10:00
    흥세전투를 대전으로잡으면

    대전이 너무 많아져서 그런것도 있음. 합비대전 석정대전 동흥대전 수춘대전....
  • [레벨:5]백마산성 2020.11.23 10:16
    가후 ㅇㄷ
  • [레벨:12]블랙페퍼프레츨 2020.11.23 10:28
    엔젤하이로 씹덕적폐새끼들이 또…
  • [레벨:1]파마 2020.11.23 10:42
    항상 재밌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다음화 가후 편도 기대되네요.
    나중에 여몽, 전예 편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레벨:4]알버트푸홀스 2020.11.23 10:54
    'The' Great war가 1차세계대전
  • [레벨:24]MYOB 2020.11.23 11:57
    알버트푸홀스 오우 감사합니다 잘못썼네용
  • [레벨:24]데라우렌티스 2020.11.23 11:51
    관서지방의 코스믹 호러 이각/곽사 브라더스 부탁드립니다.
  • [레벨:8]미ㅏ아라 2020.11.23 11:56
    ㅅㄱㅈ
  • [레벨:14]드웨인웨이드 2020.11.23 12:52
    왕평 진짜 찐이얌 항장출신이지만 개국공신들보다 낫다!
  • [레벨:21]From 2020.11.23 14:17
    항장인데 대단하구마잉..
  • [레벨:7]블루필리아 2020.11.23 21:22
    삼국지 ㅇㄷ
  • [레벨:19]빼기 19 시간 전
    낙곡대전도 이릉대전도 한국만 그렇게 부르는거였구만... 흥세전투는 처음들어서 그런가 영 입에 안붙네 ㅠㅠ 왕평 ㅇㄷ
  • [레벨:5]방패벽 13 시간 전
    나중에 오나라 주연에 대해서도 써주실 수 있으신가요? 위나라에도 명성을 떨친 키 작은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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