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국회의원 선거 부정이 원인이 되어 시작되었던 키르기스 혁명


시민들은 국회(대통령궁도 같은 건물)를 불태웠고 선관위는 선거를 무효화 시켰다.

소론바이 제엔베코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총을 쏠 수 없다며 시위 진압 대신에 사임을 선택했다.

대통령 사임 후 3달 후인 ’21년 1월 10일 실시된 선거에서 투표율 39.59% 중 79.84%의 지지율을 얻은, 혁명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감옥에 있던 사드르 자파로프가 당선되면서 3개월 간의 혁명은 사실상 끝나게 되었다.
사드르 자파로프
1. 정계 입문 전
사드르 자파로프는 1968년 키르기스스탄 이식쿨주 켕-수우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1986년 대학에 입학한 그는, 이듬해 소련군에 입대, 2년 동안 노보시비르스크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전역 후, 1991년 대학을 졸업했으며, 2006년, “보리스 옐친 키르기스-러시아 슬라브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2. 정계 입문
2005년, 튤립혁명(아카예프 대통령이 자신의 자녀들을 국회의원에게 당선시키기 위해 부정선거를 저지르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정부를 전복, 바키예프가 대통령이 되었다) 당시 바키예프를 지지했던 지지자로 이후 2번의 국회의원에 당선,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3. 망명과 투옥

2012년부터 그는 그의 고향인 이식쿨 주에서 금광의 국유화를 주장하며, 광산주와 이식쿨 주정부 간의 부패 커넥션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013년 그는 이에 대해서 집회를 가졌고, 집회 과정에서 이식쿨 주지사인 에밀벡 캅타가예프를 납치하고 인질로 삼으려 했었습니다.
그는 이 일로 키프로스로 망명, 2017년에 키르기스스탄에 돌아왔으나, 키르기스 법원은 그에게 위의 일로 징역 11년 6개월을 선고, 혁명 때까지 감옥에 있게 됩니다.
정치적 성향 및 청사진
1. 현실적 민족주의자
- 민족주의자로서 전통적 가치를 중시
- 농촌 유권자들이 크게 지지함
- 러시아는 “전략적 동반자”
70년 동안 같은 나라였기 때문에 러시아는 매우 중요
2. 부정부패 척결
- 대통령 대행 당시 부정취득 자산 환수 명령
- 키르기스스탄 최대 범죄조직 보스 체포
- 정부 이권에 친인척 개입 금지
- 정부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사법 기관 설립
- 공무원 감축
3. 경제정책
- 외국 투자자 보호
- 국가 이익을 위해 광업권 협상 전면 재수정
- 에너지 부족 문제 해결
- 행정 장벽 제거 (행정 간소화)
- 나른 주의 자원으로 중국의 부채를 상환 계획
- 환경 문제 해결 (비쉬켁의 미세먼지는 세계 최고치를 기록 중임)
이걸로 지난 10월 이후 있었던 키르기스스탄 혁명은 대통령 교체, 국회 선거 무효, 새 헌법 개정(이원집정부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로 변경)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새 대통령의 공약처럼 키르기스스탄이 당면한 과제가 모두 해결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