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7 07:40

하늘을 가르고 싶었던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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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jpg 하늘을 가르고 싶었던 검사

하늘을 가를 줄 안다는 여검사의 말에 그는 흥미가 생겼다.

대륙에 흔히 보이는 용병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그녀의 헛소리에 모두가 코웃음 칠 때 그는 심장이 뛰었다.

그래서 잘 다니던 왕실 호위기사직을 때려치우고, 하늘을 갈라보고 싶어 그녀의 뒤를 쫓았다.

“너 진짜 병신 아니야?”

스승이 되어달란 그의 말에 그녀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비웃었다. 

“그냥 술 꼴아서 뱉은 말에 빛이 보인다고? 정신 나갔구나 너?”

가시돋힌 말과는 달리 자신감이 가득한 그녀의 밝은 미소에 그는 확신이 들었다. 
이 여자는 하늘을 가르는 검성이 된다고.

5년이 흘렀다. 
그녀는 기사단을 창단했고, 이름을 날리는 검성이 되었다.

“뭐? 하늘은 언제 가르냐고? 븅신아 내가 그걸 어떻게 해.”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기사단 운영과 잦은 전투에 찌든 그녀의 모습 속에 여전히 그녀를 처음 봤던 그날 그를 매혹했던 빛이 보였기 때문이다.

3년 후 마왕이 부활했다. 
대륙 북부의 설원을 시작으로, 인간 최후의 왕국 수도까지 밀고 들어온 마왕의 군대 앞에서 왼팔이 잘려나간 그녀는 미소를 띠며 그에게 말했다.

“마지막 가르침이다 븅신같은 제자야. 똑똑히 지켜봐.”

피칠갑된 몸을 일으킨 그녀의 검이 세상을 찢어발기는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가르더니 빛을 번쩍였다.

::

이젠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그는 유명한 국립학교 역사 선생이 됐다.

“그래서요 선생님?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되는데요?”

20년 전에 일어난 대전쟁에 관한 수업 도중 수업이 끝났다.
대부분 학생들은 쉬는 시간을 만끽하는 데 반해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던 한 여학생이 교실을 나가려던 그를 붙잡았다.

“교과서에 나와 있잖니. 수도 방어에 성공한 인간은 기세를 타고 대륙 북부까지 치고 올라가 승리했단다.”
“아뇨. 정말 그 여검사는 하늘을 갈랐나요?”
“...”

잠시 고민에 빠진 그는 상처로 뒤덮인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검사는 검사란다. 마법사가 아니고.”

상상력과 호기심을 한창 꽃피울 나이의 학생을 짓밟는 말이었다. 

“하지만..할머니께서 말해주셨단 말이에요. 인간이 수도 방어 전투에서 이길 수 있던 이유는 한 검성이 하늘을 갈랐기 때문이라고..”
“할머니께서 치매가 오신듯싶구나.”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여학생을 뒤로한 채 교실을 나왔다.


‘말이 심했나.’

오전 수업에 있었던 일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는 잡념을 지우고 담배를 꺼내물었다.

퇴근 시간대의 하늘은 언제나 피를 흘리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스승인 그녀가 하늘을 갈랐던 시각과 같았다.

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진 그가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오전의 그 여학생이 그를 막아 세웠다.

“..?”
“선생님. 나 궁금해 미치겠어요.”
“뭐가 말이냐.”

성이 잔뜩 난 듯 씩씩대는 여학생이 뛰어오느라 지저분해진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마법사가 아니어도, 검사가 하늘을 가를 수 있잖아요?”

잠시.
아주 잠깐이었으나 그는 스승에게서 보였던 빛이 여학생에게 보였다.

“...”
“저기요. 선생님?”
“그게 얼마나 멍청한 말인지 알고 있는 거니?”
“뭐가 멍청해요? 전 검성을 꿈꾸고 있다고요. 선생님도 아실 거 아니에요. 제가 검술 수석으로 이 학교에 들어왔다는 걸.”
“아니아니..하늘을 가른다는 건 검성도 못해. 애초에 사람이 어떻게 하늘을 가른다는 거니?”

지독하게도 하늘을 가르기 싫어하는 스승의 밑에서 하늘을 가르는 법을 알기 원했던 제자의 삶을 수십 년을 살아온 그는 여학생의 말이 안타깝고도, 무서웠다.

“그럼 제 할머니가 헛것을 보셨다는 말이에요?”
“그렇게 위대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검성이 있다면 모두가 그 검성을 칭송하고, 역사가 기억하지 않을까?”

담배가 마려웠다. 그는 앞에 학생이 있다는 사실에도 선생님이라는 본분을 잊은 채 주머니를 뒤적여 담뱃갑을 꺼냈다.

“자. 잘 생각해보렴. 지금 너의 할머니를 제외하고 20년 전 대전쟁에서 검성이 하늘을 갈랐다는 소리를 누가 한 적이 있니?”
“...”

꿍한 표정을 한 여학생을 보며 담뱃갑을 연 그는 아까 핀 담배가 돛대인 것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서 집으로 가렴. 내가 오늘 낸 숙제량이 꽤 많을 텐데.”
“..하셨잖아요.”
“..?”
“오늘 선생님이 검성 이야기하셨잖아요.”

하긴했다. 어차피 학생들이 집중해서 듣지도 않는 수업인데, 시간 때울 겸 그의 과거 이야기를 짧게 했었다. 

물론 거짓이 가득 섞였고, 모든 학생이 듣는 시늉만 내며 잠을 자거나, 속닥거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에 그는 역사책에는 적혀있지 않은 추억팔이를 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선생님이 맨날 죽은 사람처럼 수업했었는데, 가끔 옛날이야기 해주실 땐 즐거워 보였어요. 특히 오늘 검성 이야기를 할 때요.”

하지만 그가 무심결에 툭 내뱉었던 이야기를 여학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 경청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그 검성의 제자잖아요. 맞죠?”
“...”

그는 하늘을 가르는 데 실패했다.
하늘, 아니 세상을 가르고 전장을 지옥으로 만들어 마왕의 군대와 함께 산화하는 스승을 보며 그는 처음으로 벽을 느꼈다.

일백번 죽고 다시 태어나도 그녀의 손끝 하나 따라갈 수 없다며 그는 허황된 꿈을 따라 젊음을 낭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검을 내려놨다.

이후에 그는 헛된 소망을 지우고, 먹고 살기 위해 전쟁영웅이란 혜택을 받아 지루한 교편에 섰다.
주변의 욕지거리에도 하늘을 가르는 법을 배운다며 불탔던 젊음은 15년이 흐르며 자연스레 사그라졌다.

상념에 빠진 그를 보며 여학생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하늘을 가르는 검성이 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차갑게 식었던 꿈이 꿈틀거렸다.

“선생님 뒷정보를 좀 캐봤는데요..”

여학생은 과거의 그와 닮았다.
멍청하고, 병신같았다.

“이름 좀 날리셨던데..그 기사단..”

그에겐 없는 빛이 보였다. 
기분 좆같아도, 그는 쉴 틈 없이 입을 나불거리는 저 여자아이에게 스승의 빛이 보였다.

땅이꺼지라 한숨을 내뱉은 그가 말했다.

“그래. 검사도 하늘을 가를 수 있단다. 그래서 너가 나한테서 원하는 게 뭐니?”
“선생님의 선생님처럼 검성이 되는 걸 도와주세요.”
“은퇴한 지 15년이 지났어. 견습 기사도 나보단 검을 잘 다룰 거란다.”
“짬에서 나오는 뭐시기가 있다잖아요.”
“그게 요즘 애들 유행어니?”
“어쨌든! 도와주실거죠?”

그는 딸뻘인 여자아이의 헛된 희망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꿈을 잃어버린 시체처럼 죽고 싶지도 않았고, 여학생에게서 보이는 빛을 그는 다시 한번 쫓아보고 싶었다.

“...알았다.”
“정말이죠? 나중 가서 딴말하기 없어요! 내일 제대로 이야기 나눠요! 먼저 가볼게요!!! 흐헤헤.”

요상한 웃음을 흘리며 달려가는 여학생의 모습을 보며 그는 한숨을 내쉬며 빈 담뱃갑을 쓰레기통에 내던지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대전쟁 이후 상처 난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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