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5 12:12

여요전쟁의 숨겨진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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펨코 여러분, 안녕? 다들 3월 첫번째 월요일을 잘 보내고 있지?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날씨가 풀렸는지 다소 포근한데 여러분들이 사는 곳은 어떤 지 모르겠네. 이번 겨울은 참 추웠는데 여름은 얼마나 더울련지 두렵다. 난 추운 것보다 더운 게 싫거든. 땀 질질 흘리고 개마냥 헥헥 거리는 건 진짜...으으... 그래도 다들 힘내고 오늘 하루 잘 지내보자!

강감찬영정.jpg 여요전쟁의 숨겨진 영웅들

[강감찬]
출처: http://article.joins.com/news/blognews/article.asp?listid=11644545

이번 주제는 '여요전쟁의 숨겨진 영웅들'이야. 여요전쟁은 고려와 요나라(거란)과의 전쟁을 의미해. 사람들은 이 전쟁 하면 강감찬 장군을 떠올리지. 사실 강감찬 장군은 무관이지 문관이 아니고 직접 군대를 이끈 것은 3차 여요전쟁 때 뿐이었지만, 사람들은 강감찬 장군의 최대 업적인 귀주대첩에 감동해 강감찬 장군을 한국의 위대한 명장으로 기억하지. 근데 강감찬 외에도 활약한 이들도 많은데, 정작 지금까지 이름이 오르내리는 분은 강감찬 장군 뿐이야. 최근에 양규 장군이 조명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외 영웅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

하지만 숨겨진 영웅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강감찬 장군이 귀주에서 요나라군을 섬멸해버릴 수 있었을까? 고려가 소생한 것은 단지 강감찬 장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외에 수많은 영웅들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야. 이제라도 강감찬 장군님의 위상에 가려진 영웅들을 조명하고 그들의 업적을 상기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그분들의 업적을 제대로 밝힐 수 있고 여요전쟁에 대해 좀더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지금부터 여요전쟁에서 조명받지 못한 숨겨진 영웅들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1. 백성을 구하다 산화한 영웅들, 양규와 김숙흥

2.PNG 여요전쟁의 숨겨진 영웅들

[양규]
출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Ddvq&articleno=11299806

양규에 대한 기록은 매우 희소한 편이야.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알 수 없고 초년 생애는 어땠는지도 알 수 없어. 단지 고려 목종 때 관리로 발탁되어 여러차례 승진해 형부낭중이 되었다는 것만 알 수 있어. 다만 그는 강조의 뒤를 이어 서북면 도순검사가 되었는데, 정변을 일으킨 강조가 그런 중요한 직책을 믿을 수 없는 자에게 맡길 리 없다는 걸 고려해보면 양규는 강조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어.

1010년 11월, 요나라의 황제 성종은 40만 대군(이라지만 실병력은 20만으로 추정)을 동원해 고려를 전격 침공했어. 요군은 압록강을 건넌 뒤 강동 6주의 요새들 중 하나인 흥화진을 포위해 일주일 동안 공격을 퍼부었지만 끝내 공략하지 못했어. 이에 요성종은 포로로 잡았던 고려 백성들을 흥화진으로 보내 항복을 요구했지만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는 정중한 말로 거부했어. 결국 요군은 흥화진을 내버려두고 남하해 강조의 30만 대군을 격파하고 고려의 수도 개경을 공략해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어. 이때 요성종은 흥화진에 사람을 보내 항복을 종용했어.

b2de9c82d158ccbf6b9e1c8d1fd8bc3eb1354162.jpg 여요전쟁의 숨겨진 영웅들[요성종] 너희의 수괴였던 강조가 짐에게 투항하였다. 강조의 편지를 동봉하니 이걸 보고 어서 항복해라.

강조는 실제로는 끝까지 항복을 거부했다가 참수되었지만, 요성종은 흥화진을 굴복시키기 위해 일부로 없는 사실을 지어내고 강조의 필체를 위조해 항복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던 거야. 위조된 강조의 편지와 요성종의 항복 권유서를 받아본 양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어.

"나는 왕명을 받고 왔으니 강조의 명령은 받지 않겠다."

2d73730d464155a9a898be1dde7e48ba.jpg 여요전쟁의 숨겨진 영웅들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dward4389&logNo=220645959362&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jp%2F

그후 양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 흥화진의 수비를 부하인 정성에게 맡기고, 자신은 700 결사대를 이끌고 극비리에 남하해 통주에서 1천여 명의 병사들을 수습한 거야. 대략 1700명 가량의 병력을 규합한 양규는 야밤을 틈타 곽주성에 잠입했어. 당시 요군은 곽주성을 공략한 뒤 6천여 수비병을 남겨둔 채 남하했는데, 양규는 바로 이곳을 노린 거지. 그의 야습은 대성공을 거뒀어. 1600 결사대가 6천여 요나라 수비병을 몰살하고 곽주성을 탈환한 거야! 그리고 성안에 있던 7천여 명의 백성들을 구출해 통주성으로 옮겼어.

6.jpg 여요전쟁의 숨겨진 영웅들

[김숙흥]
출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Ddvq&articleno=11299806&categoryId=646959&regdt=20091027032508


1011년 1월 1일, 요성종은 고려 현종이 멀리 피난간 것을 확인하고 곽주를 잃었으니 후방보급을 기대할 수 없어 고립될 위기에 놓이자 전군에 철군령을 내렸어. 이에 요군은 고려의 궁궐을 불사르고 북상하기 시작했지. 그때 그들은 고려인 수만여 명을 생포해 노예로 삼으려고 끌고가고 있었어. 1월 17일, 귀주별장 김숙흥은 중랑장 보량과 함께 거란군을 습격해 1만여 명의 목을 베었어. 그리고 양규도 거란군 예비병력이 주둔하고 있던 무로대를 습격해 2천여 명의 목을 베고 고려 백성 3천여 명을 구했어.

이후 김숙흥은 귀주에서 흥화진 방향으로 거란군을 추격했고 양규는 반대로 흥화진에서 귀주 방향으로 진군해 거란군을 습격했어. 양규는 이수에서 석령까지 거란군을 습격해 2천 5백여 명을 죽이고 고려인 1천여 명을 구했어. 그리고 3일 뒤에 여리참에서 3번의 전투를 벌여 1천여 명의 적병을 죽이고 고려인 1천여 명을 탈환했어. 이렇듯 양규와 김숙흥은 거란군을 끊임없이 습격하며 계속 타격을 입히고 고려 백성들을 최대한 구출하는 데 주력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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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dward4389&logNo=220645959362&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jp%2F

그후 양규와 김숙흥의 고려군은 3번 연달아 싸워 모두 승리해 고려인들을 구출하고 1월 28일 애전에서 합새해 거란군 1천여 명의 목을 베었어. 그런데 얼마 후 요성종이 지휘하는 거란 대군이 난데없이 출현해 양규와 김숙흥,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고려군을 포위했어. 이에 양규와 김숙흥은 그들이 구해낸 고려 백성들이 안전하게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온힘을 다해 싸웠어. 그들은 단 한명도 항복하지 않고 그야말로 처절하게 싸우다가 끝내 전원이 목숨을 잃었어. 양규와 김숙흥은 원군도 없이 한달 사이에 7번을 싸워 많은 적군의 목을 베었고 그들이 구출한 백성들은 3만 명에 달했어. 그리고 말과 낙타와 병장기를 노획한 것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지. 

현종은 전쟁이 끝난 뒤 양규를 공부상서로 추증하고 그의 처인 은률군군 홍씨에게 곡식을 지급했으며 아들 양대춘을 교서랑으로 임명했어. 또한 왕은 손수 교서를 지어 홍씨에게 내려줬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어.

"그대 남편은 장군으로서의 지략을 갖추었고 또 올바른 정치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항상 송죽과 같은 절개를 지니고서 끝까지 나라에 충성을 바쳤으니, 그 충정은 비할 데가 없었으며, 밤낮으로 노고를 잊고 직무에 충실하였다. 북쪽 국경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중군에서 용맹을 떨치면서 군사들을 지휘하니 그 위세는 돌과 화살을 압도하였고, 원수를 추격하여 생포하니 그 힘으로 국토를 안정시켰다." 

"한 번 칼을 뽑으면 만 명의 적군들이 다투어 달아나고, 강궁을 당기면 모든 군대가 항복하였다. 이로부터 성과 진이 온전할 수 있었으며, 군사들의 마음은 더욱 씩씩해졌다.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으나 불행히도 전사하였도다. 빼어난 전공을 항상 기억하여 이미 공에 따라 벼슬을 올렸으나 다시 전공에 보답할 생각을 간절히 하여 더욱 널리 알리고자 한다. 그대에게 해마다 벼와 곡식 1백 석을 종신토록 내려줄 것이다."

또한 김숙흥에게도 장군을 추증해주고 그의 모친 이씨에게 곡식을 지급하게 했으며 이씨에게도 교서를 내려줬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어.

"장군 김숙흥은 변방의 성을 지킬 때부터 적과 용감히 싸워 파죽지세의 승리로 전공을 세웠으나, 복병이 쏜 화살에 맞아 끝내 목숨을 거두고 말았다. 과거의 노고를 기념하여 마땅히 후한 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에 그의 모친에게 매년 곡식 50석을 종신토록 주노라."

그후 두 사람은 문종 대에 공신각에 초상이 걸렸고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충신으로서 후세인의 추앙을 받았지...


2. 양규를 대신해 흥화진을 지키고 철수하는 요군에게 제대로 한방 먹인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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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522206519267846244/

정성(鄭成)은 고려시대의 무신이야. 1010년 11월 요성조이 흥화진을 포위했을 때, 당시 진사 호부낭중이었던 정성은 도순검사 양규, 부사 이수화 등과 함께 흥화진을 굳게 지켰어. 흥화진을 일주일간 공격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요군은 남쪽으로 진군했어. 그후 양규가 700결사대를 이끌고 남하했을 때, 정성은 양규를 대신해 흥화진사가 되어서 흥화진을 굳건히 지켰어.

1010년 1월 28일 양규와 김숙흥의 결사대를 전멸시킨 요군은 뒤이어 압록강을 건너 본토로 귀환하려 했어. 이때 요군은 큰 비로 인해 말과 낙타가 쇠약해지고 무기가 모두 망실된 상태였지. 정성은 흥화진에서 출격해 이들을 추격하다가 적이 강을 반쯤 건넜을 때 후미에서 공격해 수많은 거란군을 주살했어. 이때 물에 빠져 죽은 자들이 매우 많았다고 해. 당연히 보상을 받았겠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그후엔 존재하지 않아.


3. 어려운 상황에서 서경을 지키고 귀주대첩의 조연으로서 맹활약한 강민첨

IMG_3447.jpg 여요전쟁의 숨겨진 영웅들

[강민첨 초상화(보물 제588호)]

출처: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ODaQ&fldid=RZSh&datanum=12&q=%BC%B1%C1%B6%C3%CA%BB%F3%C8%AD&_referer=V7kfJwkeLEGMZxGlgqZEmd.OXy63h9u4742bhxxCrNHSHoUSjJa5cgqSlfgnbnon

강민첨은 경상남도 진주의 진강 사람으로 목종 때 과거에 급제했어. 그는 문과로 벼슬에 오른 사람으로, 무예와는 거리가 멀었어. 그러나 기개가 굳고 과단성이 있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꿋꿋이 자기 할 일을 다했지. 현종 즉위년(1009년), 동여진이 바닷길을 통해 청하현(경상북도 흥해군), 영일현(경상북도 포항시), 장기현(경상북도 포항시)로 침입하자, 강민첨은 문연, 이인택, 조자기와 함께 주, 군의 군사를 독려하여 이들을 격파했어.

그후 1010년 11월 거란군이 몰려와서 통주성 부근에서 강조의 대군을 격파한 후 서경으로 남하했을 때, 서경 수비군은 싸울 마음을 잃고 항복을 결의했어. 그때 지채문과 탁사정의 구원군이 당도해 서경의 민심을 안정시킨 후 요군과 계속 싸우기로 결의했지. 그런데 총사령관 탁사정이 대도수더러 성 동문에서 나와서 적의 시선을 잡아끄는 사이 자기는 서문에서 나와 적을 습격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정작 서문에서 나오자마자 남쪽으로 줄행랑 치는 바람에(.....) 대도수가 졸지에 패해 항복하자, 서경은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어. 총사령관은 비겁하게 도망쳐버리고 주력군은 궤멸되었으니 그럴 만 하지. 

그때 중간급 간부였던 통군 녹사 강민첨은 조원과 함께 잔여군을 수습해 서경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어. 그는 이 공을 인정받아 공신으로 책봉되었고 이후에도 승승장구했어. 그러다가 1018년 요나라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 현종은 강감찬을 대원수로 삼아 고려군 전체를 통솔하게 하는 한편, 강민첨을 부원수로 삼아 강감찬을 보좌하게 했어. 그후 강감찬과 강민첨이 이끄는 고려군은 흥화진에서 거란군을 격파했어. 

그런데 소배압이 피해를 무릅쓰고 개경으로 닥돌하자, 강민첨은 별동대를 이끌고 자주(평안남도 순천시)의 내구산까지 추격하여 거란군을 크게 물리쳐 1만여 명의 목을 베었어. 이 때문에 소배압의 요군은 개경으로 더이상 진군하지 못하고 귀환하다가 귀주에서 고려군에게 철저히 섬멸당하고 말았지. 강민첨은 그 공으로 1019년에 응양군 상장군이 되었고 곧이어 우산기상시에 올라 추성치리익대공신이 되었으며  이듬해 지중추사 병부상서가 되었어. 

1021년 강민첨이 병사하자, 현종은  사흘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태자태부에 추증했어. 그리고 그의 아들강단(姜旦)에게는 녹봉을 올려주었고 문종 대엔 공신각에 초상을 걸게 해 길이 기리게 했어.

4. 1만 기병대를 이끌고 극적으로 나타나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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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대첩]

출처: http://topsy.tistory.com/2510

김종현(金宗鉉)은 고려 전기의 문신이야. 그는 1011년 감찰어사에 임명되었고 1019년 강감찬의 휘하에서 병마판관으로서 기병대 1만명을 거느리고 수도 개경으로 달려가서 개경으로 닥돌하고 있던 소배압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만들었지. 이에 소배압은 철군을 결심하고 귀환하다가 2월에 귀주에서 강감찬의 20만 대군과 마주쳤어. 이후 양 군대는 귀주의 동쪽 들판에서 대규모 접전을 벌였는데 매우 팽팽해서 승패가 쉽사리 결정되지 않았어.

이때 개경에서 철수하는 거란군을 추격하고 있던 김종현의 1만 기병대가 전투 도중에 출현해 거란군의 후미를 급습했어. 그러자 거란군은 패주하기 시작했고 김종현 등은 이를 뒤쫓아서 석천을 건너 반령에 이르니 시체가 들판을 뒤덮였고 사로잡은 군사와 말, 낙타, 갑옷, 투구, 병기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해. 김종현은 그후 예부원외랑이 되었고 1031년 우간의대부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우산기상시가 되었어. 그러나 그 후 그가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어.

5. 비참한 패전의 와중에 아군을 구해냈지만 후에 반역자가 되어버린 김훈

김훈(金訓)은 고려 전기의 무장이야. 1010년 11월 요군이 통주성 근처에서 강조의 군대를 크게 이기고 패주하는 고려군을 추격했을 때, 좌우기군장군이었던 김훈은 김계부, 이원, 신영한 등과 함께 정예병을 이끌고 완함령에 매복했다가 추격하는 요군을 급습해 격파해버려서 요군이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게 해 많은 고려 병사들을 구해냈어. 그는 이 공으로 상장군에 이르렀지.

그런데 1014년, 중추원 일직원 벼슬을 맡고 있던 황보유의와 중추원사 장연우가 조정에 건의해 중앙군의 영업전을 빼앗아서 녹봉에 충당하기로 했어. 이에 무인들은 "저놈들이 우리 땅을 빼앗아서 자기네 잇속을 채우려 든다."며 분개했고 김훈은 상장군 최질과 함께 병사들을 선동해 궁궐로 쳐들어가 현종을 협박하여 황보유의와 장연우 등을 귀양 보내게 했어. 그후 김훈은 현종을 협박해 상임 무관들이 모두 문관을 겸하게 하고 어사대를 없애고 금오대를 두었으며 삼사를 폐지하고 도정서를 두게 했어. 이리하여 무관은 문관을 겸해 발호하여 조정의 기강이 문란하게 되어버렸지. 


이에 보다못한 현종은 서경유수판관 이자린의 계책을 받아들여 서경 장락궁에 잔치를 베풀고 무신들을 초대했어. 김훈은 최질, 이협, 최가정, 석방현 등 19명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취해버렸는데, 현종은 이틈을 타 병사들을 불려들어 이들을 모조리 죽였어. 결국 김훈은 통주성 전투의 와중에 아군을 구해낸 공적을 세웠으나 왕을 협박하고 권력에 탐을 낸 대가를 치르고 반역자로 낙인찍히고 말았지...

6. 현종의 피난길을 끝까지 지킨 충신, 지채문

j01-0.jpg 여요전쟁의 숨겨진 영웅들

[지채문]
출처: http://www.bongsanji.net/zb/view.php?id=bongsa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reg_date&desc=desc&no=1

지채문은 고려 시대의 무신이야. 그는 봉산 지씨의 시조이지만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어. 1010년 중랑장에 임명되었는데, 그무렵에 거란이 침입하자 화주에 파견되어 동북 방면을 방비하다가 강조가 패전하자 서경을 구하기 위해 시어사 최창과 더불어 강덕진에 진을 쳤어. 그런데 서경 백성들이 성문을 열지 않자, 최창이 성안에 있던 조자기와 연락해 성문을 열게 했지. 

그러나 서경 부유수 원종석 등은 거란의 항복 제의를 받아들이고 끝내 싸우려 하지 않자, 지채문은 병사를 풀어 거란 사절단을 모조리 죽이고 항복문서를 빼앗아 불태웠어. 서경 백성들은 "저놈들이 우릴 죽이려 든다."며 분노했고 지채문은 일단 성 밖으로 빠져나왔다가 동북면도순검사 탁사정과 합세해 서경에 들어가 민심을 안정시키고 뒤이어 요군을 격파해 사기를 끌어올렸어.

그런데 탁사정이 대도수더러 성 동문으로 나가서 적의 시선을 끄는 사이 자신은 서문으로 진군해 적을 습격하겠다고 약속해놓고는 정작 서문으로 나가자마자 남쪽으로 줄행랑치는 바람에(.......) 대도수가 항복하고 주력군도 섬멸당하자, 지채문은 개경으로 도주해 서경의 전황을 알렸어. 이에 신하들은 현종에게 항복하자고 건의했지만 강감찬 등은 파천하여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했고, 지채문은 강감찬의 의견에 동의해 현종이 파천을 선택하게 했지. 이때 그가 선뜻 나아가 왕의 호위를 자청하자, 현종은 크게 감동해 이렇게 말했어.

"전날 이원, 최창이 수행하겠다고 자청하더니 지금은 다시 얼굴조차 볼 수 없으니 신하된 도리에 어찌 이럴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대는 전선에서 수고했는데 또 짐을 호위하겠다고 하니 짐은 그 뜻을 가상하게 여기노라."

역사저널그날 강감찬.jpg 여요전쟁의 숨겨진 영웅들

출처: http://coffeeandpotatowarehouse.tistory.com/4006

이후 현조은 지채문, 이부시랑 채충순 등 일부 신하들과 금군 50여 명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피난가기 시작했어. 그런데 적성현 단조역에 이르렀을 때 무졸 건영이 역인과 더불어 국왕 일행을 습격하려 들었어. 이에 지채문은 말을 달리며 화살을 쏴서 이들을 몰아냈지. 그런데 다시 서남쪽 산을 지나치던 와중에 앞서 패주했던 그들이 또다시 나타나 길을 막았는데, 지채문은 다시 화살을 쏴서 이들을 물리쳤어. 

하지만 이 와중에 왕을 호종하던 신하, 병사, 노비들은 다 달아나 버렸고 주전론을 주장하던 장수들마저 태반이 달아나버렸어. 이때 강감찬도 현종의 몽진 시기에 따로 기록이 없는데, 아마도 다른 임무 때문에 다른 곳에 갔거나 도망쳤을 것으로 보여. 그런 와중에도 지채문은 현종을 끝까지 따랐지. 그후 현종 일행이 창화현에 이르렀을 때 고을 현리가 왕에게 이렇게 물었어.

"왕께서는 제 이름과 얼굴을 아십니까?"

고려 시절의 현리가 지방 호족으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했어. 하지만 전국을 다스리는 왕이 일개 지방 호족의 이름과 얼굴을 어떻게 알겠어? 현종은 그의 무레함에 화가 났지만 애써 모른척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러자 현리는 왕이 자기를 무시한다며 분노해 사람을 시켜 하공진이 군사를 거느리고 온다고 외치게 했어. 지채문이 깜짝 놀라 하공진이 무슨 일로 오느냐고 묻자, 현리는 채충순과 김응인을 사로잡기 위해 오고 있다고 대답했어.

채충순과 김응인은 현종의 최측근이었어. 그리고 하공진은 지난날 조정의 허락도 받지 않고 동여진을 습격했다가 패한데다 동료인 류종이 쓸데없는 원한을 품고 고려에 귀순한 여진인 95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바람에 유배되었다가 이 무렵에 유배지에서 풀려나 현종을 호종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던 참이었어. 그러니 하공진이 자신을 유배보낸 현종에게 원한을 품고 군대를 끌고 가서 복수하려 들지도 몰랐기 때문에 현종 일행이 겁을 집어먹은 건 당연하겠지. 

김응인, 이정충, 국근은 겁을 집어먹고 도망쳐 버렸고 밤 무렵엔 헛소문을 퍼트린 현리가 동원했을 것으로 추정된 적이 공격해오자 그나마 남아있던 신하, 환관, 궁녀들까지 죄다 도망가버리고 경종의 후궁 대명궁부인, 성종의 2비 문화왕후, 문화왕후의 딸이자 현종의 부인인 원정왕후, 시녀 2명, 승지 몇명만 남았어. 계다가 원정왕후는 이때 임신 중이었어! 그야말로 최악인 이 상황에서도 지채문은 남아서 한줌 남은 근위대로 적을 물리쳤지만 말과 기물을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어.

이윽고 새벽이 되었을 때 지채문이 두 왕후에게 먼저 북문으로 탈출해 나가게 한 뒤 손수 임금의 말을 몰고 사잇길로 가서 도봉사로 들어갔어. 어찌나 비밀스럽게 빠져나갔는지, 반란군은 왕이 빠져나온 걸 알아차리지 못했대. 이후 채충순이 뒤따라 오자, 지채문은 "지난밤의 적은 하공진의 군사가 아닌 듯 하니 신이 가서 뒤를 밟아보겠습니다."라고 건의했어. 하지만 현종은 지채문마저 도망칠까 두려워 허락하지 않았지. 그러자 지채문이 맹세했어.

"신이 만약 주상을 배반하여 행동이 말과 어긋난다면 하늘이 반드시 신을 죽일 것입니다!"

이리하여 왕의 허락을 받은 지채문은 양주로 향하다가 도망쳤던 국근을 찾아내 자신들과 함께 하게 했고 뒤이어 하공진을 만났어. 지채문이 그에게 정말 반역했냐고 묻자, 하공진은 "천무당만부당한 소리다."며 부인했어. 이에 지채문은 하공진이 이끌고 있던 병사 20여명을 데리고 가서 양주에 들어가 빼앗겼던 말과 안장을 되찾아왔어. 이후 현종 일행은 계속 남하했는데, 이때 현종을 따르고 있던 류종과 김응인이 아뢰었어.

"두 왕후를 각각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경위하는 장병들은 동쪽 방면으로 출동시켜야 합니다."

이 말은 전쟁으로 흉흉해진 민가에 국모들을 내버리자는 소리였어. 그러자 지채문은 울면서 간언했어.

"지금 임금과 신하들이 모두 도리를 잃고 환난을 당해 파천하게 되었으니 이때가 바로 인과 의로써 행동하여 인심을 수습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어찌 왕후를 버리고 혼자만 살 길을 구하자는 생각을 차마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현종은 이에 찬동해 류종 등의 주장을 묵살했어. 이후 현종 일행이 사산현에 이르렀을 때, 지채문은 왕이 고생스런 피난길 때문에 매우 우울해하고 있는 걸 보고 왕의 마음을 안정시켜주기 위해 퍼포먼스를 선보였어. 그는 논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에 말을 달려 기러기떼가 놀라 날아가게 한 뒤, 마상에서 몸을 휙 돌려서 활을 쏘아 기러기 한마리를 맞추어 떨어뜨렸어. 그는 말에서 내려 화살에 맞아 떨어긴 기러기를 주우면서 왕에게 바친 뒤 이렇게 말했어.

"이렇게 활을 잘 쏘는 신하를 두셨으니 도적이 있은 들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현종은 크게 웃으며 우울했던 감정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해. 그런데 양성을 지나 여양현에 이르렀을 때, 병사들이 "이젠 더이상 못참겠다. 왕을 모시느라 고생하느니 차라리 도망치자."라며 불만을 터트리자, 지채문은 왕에게 아뢰어 현안지 등 16명에게 중윤을 제수하도록 해 병사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어.

그런데 현종 일행이 삼례에 이르렀을 때, 전주절도사 조용겸이 왕을 전주에 모셔놓은 후 군대를 이끌고 가서 왕이 머무는 전각 앞으로 전진시켰어. 지채문은 조용겸이 왕을 허수아비로 삼고 천하를 호령하려는 술책이라는 걸 간파하고 전각의 문을 닫고 굳게 지키면서 왕을 호위했어.그후 그는 조용겸의 수하들을 질책해 현종을 만나뵙게 하고 그들이 오히려 조용겸을 저버리고 그를 억류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지.

그후 현종 일행이 나주에 이르렀을 때 거란의 사절이 찾아왔어. 이때 한 야경꾼이 거란군이 쳐들어온 것이라고 오해하고 왕에게 달려와 "거란군이 쳐들어왔습니다!"라고 보고했어. 현종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바로 달아나려 했지. 그러자 지채문은 왕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직접 정찰을 나가서 이들이 사절단이지 군사가 아니라는 걸 확인했어. 

이렇듯 현종을 끝까지 보필한 지채문은 이듬해 호종의 공으로 토지 30결을 하사받았고 1016년 우상시가 된뒤 1026년 상장군 우복야에 올랐다가 그해 세상을 떠났어. 그리고 1031년에 현종을 호종한 공으로 1등공신으로 추록되었어. 그러나 불행히 그의 증손이 인종 때 반란을 꾀하다가 발각당해 사지가 끊기는 참혹한 최후를 당했고 의종 때 지채문의 후손이 송나라가 고려를 공격할 때 여기에 내응하는 계획을 세웠다가 들켜 사살당하는 결국 지채문의 가문은 몰락하고 말았지...

7. 요나라군이 물러가게 한 뒤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가 장렬하게 죽은 하공진

img_257362_2 (1).jpg 여요전쟁의 숨겨진 영웅들

출처: http://www.gnnews.co.kr/news/oldArticleView.html?idxno=257362

하공진은 고려시대의 무신으로 본관은 전주야. 그는 994년에 압강도구당사로 임명되었고 목종 때 중랑장이 되었지. 목종이 병들어 자리에 눕자 친종장군 유방, 중랑장 탁사정 등과 함께 목종이 거쳐하는 궁궐 주변을 지켰으며 얼마 뒤 상서좌사낭중이 되었어. 그러다가 강조의 정변 때 강조에게 가담해 강조가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을 세우는 걸 도왔고 뒤이어 동계로 보내져서 군대를 이끌게 되었지. 

그런데 하공진은 조정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류종과 함께 동여진을 공격했다가 패했어. 계다가 류종은 패전에 원한을 품고 고려에 귀부한 여진인 95명을 죽였어. 이 사실이 들어나자 하공진과 류종은 유배되었지. 그러다가 1010년 11월 요성종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침입하자, 하공진은 유배에서 풀려나 조정으로 합류하러 달려갔어. 그는 호부원외랑 고영기와 함께 군사 20여 명을 거느리고 당시 남쪽으로 피난 중이던 현종 일행과 합세하려 했지.

그런데 앞서 봤듯이 현리 한 놈의 농간 때문에 현종 일행은 하공진이 자신을 유배보낸 것에 원한을 품고 군대를 끌고 오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었어. 이에 지채문이 가서 하공진과 만나 꾸짖었지.

"귀공은 어찌 사사로운 원한에 집착해 반역을 꾀했단 말이오!"

그러자 하공진이 극구 부정했지.

"제가 어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저는 국왕을 호종하러 20여 인을 모아 오고 있었습니다."

이에 지채문은 "간사한 자가 없는 말을 지어내 왕을 놀라게 했다."고 알리고 그와 함께 현종에게 가서 모든 사실을 밝혔어. 그후 하공진은 다음과 같이 아룄어.

"거란은 본래 역적 강조를 토벌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아 침략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강조를 잡아갔으니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단하면 그들은 군사를 돌릴 것이옵니다."

그는 스스로 사신으로 가기를 자청해 북족으로 향했어. 그런데 그가 창하현 관아에 닿기도 전에 거란군 선봉과 조우했어. 즉, 현종 일행과 거란군 선봉과의 거리는 10여 리에 불과했다는 소리였지!!! 실로 아찔한 순간이었지. 만약 하공진이 가서 시간을 끌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ㅡㅡ;;;

아무튼 하공진은 요군의 안내를 받아 요성종을 만났어. 요성종이 너희 왕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하공진은 이렇게 대답했어.

"강남으로 피난가셨는데 거리가 수천리가 되고 중간에 큰 바다가 있습니다."

요성종은 그 말을 듣고 식겁했어. 양규, 김숙흥 등이 후방에서 날뛰고 있어서 보급이 끊겨버렸는데다 현종이 그렇게나 멀리 도망쳤다면 더 쫓아가봐야 의미가 없잖아? 하공진은 고민에 빠진 요성종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어.

"저희 국왕께서는 폐하께서 군대를 물리신다면 입조해 폐하를 알현하여 죄를 고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당시 요군은 보급이 끊기고 각지에서 저항이 심해 곤란에 처해 있었어. 그런 와중에 국왕이 입조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제 명분이 생겼잖아? 그래서 요성종은 퇴각을 결정했어. 1011년 1월 11일, 거란군은 전격 철군했어. 다만 하공진은 고영기와 함께 볼모로 잡혀서 요나라로 끌려갔지.

그후 하공진은 거짓으로 귀순해 요성종의 신임을 받았어. 그러다가 고려가 멸망했으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점검하고 오겠다고 말해 허가를 받은 뒤 탈출을 기도했으나 발각되는 바람에 연경으로 옮겨서 양가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되었어. 하공진은 순종하는 척하면서 준마들을 많이 사서 고려로 가는 길목에 배치해두고 탈출을 기도했어. 그런데 기밀이 새는 바람에 이 사실이 발각되었고, 결국 하공진은 요성종에게 끌려갔어.

요성종은 하공진을 아까워하며 한편으로는 회유하고 다른 한편으로 고문하며 신하가 될 것을 강요했어. 그러나 하공진은 끝까지 거부했어.

"나는 고려인이다. 감히 두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역사저널 그날.E126.160529.거란 재침공! 강감찬, 왕에게 피난을 주장하다.720p-NEXT.mp4_20160601_123837.153.jpg 여요전쟁의 숨겨진 영웅들

출처: http://eguegu.tistory.com/3404


그러면서 그는 요성종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어. 이에 요성종은 격노해 그를 죽이고 심장과 간을 꺼내게 한 뒤 사람들로 하여금 뜯어먹게 했어. 이렇게 하공진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거야....


그후 문종 대에 하공진은 공신각에 자신의 초상화를 놓게 되었고 그의 아들 적충은 5품직을 제수받았어. 또한 하공진은 상서공부시랑을 추증받았고 진주성에 자신의 사당과 사적비가 마련되었지.


이상으로 여요전쟁 시기 고려의 숨겨진 영웅들을 알아봤어. 이들이 없었다면 고려는 요나라에게 속절없이 무너졌을 거야. 그러니 우리 모두 그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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