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9 21:49

삼국지 분석글) 마속은 산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조회 수 23923 추천 수 217 댓글 168

마속은 대체 왜 산으로 올라갔을까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 주제에 대해 수없이 의논하고 토론하며여러가지 의견을 제시했으나 대부분의 결론은 제갈량의 명을 어겨 길목를 막지 않고 산으로 올라간 행위에 대해 비난할 뿐입니다. 마속은 왜 산으로 갔을까요?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아니면 손자병법의 구지전을 참고해서?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누구도 이 등산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천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정확히 알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죠.


, 가설은 존재할수 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가설에 불가한 뇌피셜 입니다. 다만, 방구석에서 구글 맵이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 혹은 이책저책 뒤져보며 생각해낸 가설이 아닌 올해 8월과 10월 초두 번에 걸쳐 삼국지 기행으로 직접 가정에 가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 뿐 입니다.

삼국지 분석글) 마속은 산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비석에는 삼국지 옛 전쟁터 가정이라 적혀 있습니다> 

삼국지 분석글) 마속은 산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가정으로 가는 길 - 길이 매우 험 합니다. 추월로 교통사고 한번 날뻔 하고 낙석된 도로 두서번 보고 교통사고 한두번 목격하면 비로써 가정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삼국지 분석글) 마속은 산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가정 옛 전쟁터까지 2km 남았습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바로 본론 시작하죠. 아래는 제가 드론으로 직접 찍은 가정 영상 입니다. 괜히 조회수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 사진도 밑에 같이 남겨드립니다ㅎㅎ (친절 굿?)



삼국지 분석글) 마속은 산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가정 옛 전쟁터가 있는 중국 감숙성 진안현 롱청쩐의 모습입니다> 


삼국지 분석글) 마속은 산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마속이 등산한 남산의 모습입니다.> 


삼국지 분석글) 마속은 산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가정의 동쪽과 남산의 맞은편 북산의 모습 입니다. 남산에 오르면 지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장합은 동쪽에서 부랴부랴 달려왔겠죠.>

삼국지 분석글) 마속은 산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가정에서 만난 현지 주민에게 가정으로 가는 길과 마속이 왜 산으로 올라갔는지에 대해 여쭤보았습니다. "가보면 알아요! 산 위가 매우 평탄합니다!" > 


영상 혹은 사진을 보면 아래와 같이 유추해 볼 수가 있습니다.


 1. 가정은 단순 길목이 아니다.

 2. 가정은 우리나라 면급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다.

 3. 제가 있는 곳 (남산) 의 맞은 편 산 (편의상 북산이라고 할게요) 의 높이는 매우 낮고 험악하지 않다.

 4. 남산의 정상은 알려진대로 (다랑이 논 같은) 평탄한 모습이다.

 5. 가정은 전혀 협소하지 않다. 


위에 가정 지형을 보면 알 수있듯이 남산 바로 앞 북산이 검각 처럼 측면을 완벽히 보호받을 수가 없는 지형입니다. 또한 생각보다높지가 않습니다. 심지어 사람들도 북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왔다갔다 합니다.


제가 지나가던 가정 주민을 붙잡고북산에 사람이 올라 갈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사람이 올라가는데 아무 문제 없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직접 올라가보려고 했지만ㅠㅠ 이건 시도 못했네요ㅋㅋ 암튼 그렇다고 합니다.




! 그럼 위 사진 혹은 영상을 보면서 본인이 마속에 빙의하여 가정에 도착했다고 칩시다. 참고로 당시 가정은 토성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고을로써 오랫동안 전쟁을 겪지 않은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전 대학교수 이자 퇴직 후 현재 감숙성 진안현 여행국 홍보위원장로 활동하고 있는 까오쭝더 님께 직접 자문을구한 내용입니다. 영상도 있음, 차후 본인 유튜브에 업로드예정) 어쨌든 개인적으로 마속의 심정을 아래와 같이 가정해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1) 아씨! 가정성만막으면 된다고 하더니! 병력을 분산시켜서 북산까지 막아야 하겠는걸? 괜히병력 분산시켰다가 한곳이 뚫려버리면 끝장나겠는데?


2) 아니야! 명령대로가정성만 지켜자! 아 그러면 북산에 위나라 군이 올라가서 가정성 정면과 북산으로 포위하여 정면과 산위에서 동시에 치고 내려오면 답 없겠는데??


3) 아!!!!! 주민들도졸라게 안 도와주고 가정성 포기하고 남산으로 올라가자! 거기서 위군과 대치하는게 더 나을 수 있겠다!!! 손자병법 구지편 비지와 사지에도 나와 있으니!  등산하자!!! 

삼국지 분석글) 마속은 산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까오쭝더 감숙성 진안현 여행국 홍보위원장을 우연히 만나 삼국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옆에 계신 중국 공무원분께 인터뷰 요청했더니 워낙 바쁘신 분이니 5분 정도만 시간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인터뷰 시작하고 한국에서 왔다니 이 먼길까지 어떻게 왔냐며 가정현 역사부터 왕평과 마속이야기 까지 30분을 넘게 설명해 주십니다. 영상 찍으면서 팔 부러질 뻔...."가정성 안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곳은 가천정(街泉亭)이라 불리었죠. 진수는 삼국지에 가천정의 천(泉) 자를 생략하고 가정이라 적었고 이로인해 가정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삼국지 분석글) 마속은 산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옛날에 이곳에 우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속이 가정성을 포기한 것은 이 우물을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추가로 가정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까오쭝더 진안현 홍보위원장님께서말씀해주시기를 당시 가정성 주민들이 촉나라 군에 대해 굉장히 반감을 보였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전쟁없이평화롭게 살다가 촉나라 군대가 왔으니 당연히 반감을 보였겠죠. 또한 식량과 물 공급에도 굉장히 비협조적이었다고합니다. 제갈량이 남만정벌 당시 마속은 제갈량에게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한적이 있습니다. 그런 마속이 가정 주민을 상대로 다른 비인간적인 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너무 여린 마속ㅠㅠ 재평가해야됑)


 


어쨌든 마속이 이런 결정을 내리자 왕평이 반대했을 겁니다. 아래와 같이 삼국지 정사 기록을 살펴봅시다.


파성넷에서 가져온 삼국지 왕평전 입니다.


건흥(建興) 6, 참군(參軍) 마속(馬謖)에게 소속되어선봉(先鋒)이 되었다. 마속은물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는데 (지형이) 행동하기에 번잡하였으므로왕평은 계속 마속에게 규간(規諫)하였으나 마속이 이를 쓰지못하여 가정(街亭)에서 크게 패하였다.


김원중님께서 번역한 정사 삼국지 왕평전의 내용입니다.


건흥 6(228) 왕평은 참군 마속의 선봉대에 소속되었다. 마속이 수로를 버리고산으로 올라가 진을 구축하고 어지럽게 지휘하자 왕평은 여러 번 마속에게 간언했다. 그러나 마속은 그의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 가정에서 크게 졌다.


저는 이 기록을 보면서 규간(規諫)과 간언이라는단어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으로 올라간 왕평이 마속에게 규간하고 간언했다. 예가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 따지자면 경험이 풍부한 문맹 원사가 육군사관학교 출신에 전도유망하고 국방부장관의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대위에게 규간과 간언을 여러 번 한 셈이죠. 물론 할 수 있죠. 그러나 영상과 사진을 보면 알다시피 가정과북산을 함께 지키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한 마속이 남산으로 올라간 것만으로 전쟁에 패배했다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왕평의 여러 번의 규간과 간언으로 인한 마속과 왕평 간의 다툼은 위나라와 싸우기 전부터 아니 물이 부족하기전부터 분명히 촉나라 군대의 사기에 영향이 미쳤을 것입니다. (저는 마속과 왕평 간의 다툼이 등산과물을 떠나 절대적인 패배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산으로 올라갔어도마속과 왕평이 화평했다면 혹은 물에 대한 중요성을 마속보다 조금이라도 더 인지하고 있었던 왕평이 마속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와 함께 죽을 때 까지싸워졌다면 승리는 못하더라도 완전 대패는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혹은 읍참마속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어쨌든이러한 가설을 내려봅니다.


 


! 이제 하나더 남았습니다. 바로 물 입니다. !!!!


가정 영상 혹은 사진을 다시 한번 보시면 물(하천,청수하(水河)라고 부릅니다.) 이 보이는데 북산 바로 아래 있습니다!!!!!!!!!!!!!!!!!!!!!!!!! 남산아래라면 얼마나 좋아??? 정말 마속의 운명의 장난같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북산을 포기하는 것은 바로 물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장합이 진짜 죽을 힘 다해 왔더니 마속은 남산에있고 가정성은 비어있고 북산 바로 아래 물이 흐르고 있으니 물 공급을 끊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이건장합이 아니라 다른 장수 누가 와도 이렇게 했을 겁니다. 그럴 정도로 물은 정말 뻔한 장소에 흐르고있는거죠. 마속도 당연히 알았을 겁니다. 그러니 물을 포기하고등산한다는 말에 왕평이 극구 반대할 만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속은 왜 물을 포기하면서까지 산으로갔을까요? 위에 제가 제시한 가설 때문에?

삼국지 분석글) 마속은 산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북산 바로 아래에 흐르는 청수하 입니다. 가정성 안의 우물과 이 하천이 가정에서 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 입니다> 
삼국지 분석글) 마속은 산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북산 밑에서 만난 주민이 사람들이 북산에 오르는 것은 전혀 문제도 없다고 설명하고 계십니다. 사진 속 뒷 모습은 남산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속에 대해 한가지 더 생각해 볼 필요성이있습니다. 마속이 어디 출신일까요? 바로 형주 출신입니다. 다 알죠 이건? 근대 형주는 어떤 지역일까요? 바로 물물물물물물물!!!!!!!!!!!!!! 비만 오면 홍수나고심심하면 비 내리고 물이 정말 넘치고 넘치는 지역입니다. 또한 날씨까지 습하죠. 그런 곳에서 자란 마속입니다. 그리고 마속이 입촉 이후의 사천성은어떤 지역일까요? 사천성 길게는 한달 동안 비가 내리는 지역입니다. 어디에서든물 마시고 물의 부족함을  모르고 자란 마속일 겁니다. 그에 반해 감숙성, 섬서성은?? 날씨가완전 반대죠. 진짜!!!!!!!!!!!!!!!!!! 감숙성, 섬서성 정말 건조하기 끝판왕을 찍는 지역입니다. 거짓말 안하고 밤12시에 빨래 널고 자고 일어나면 옷 다 말라 있습니다. 진짜건조해서 미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감숙성, 섬서성 일대 입니다. 또한이 지역은 평균 고도가 매우 높아서 햇빛이 굉장히 가깝게 느껴집니다. 엄청 눈부시게 덥죠. 왕평이 물에 대해 언급하자 물의 부족함 모르고 자란 마속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겠죠. ! 그까짓 게 뭐 대수겠는가?비 한번 내리겠지 


감숙성에 와본적이 없는 마속이 여기서 틀린 겁니다. 이건 제갈량도 몰랐겠죠. 지도로는 알아도 기후는 몰랐겠죠. 아니 알았어도 체험한 적이 없었을 겁니다. 너무 건조한 날씨에 생각보다일찍일찍 소모되어가는 물, 그리고 사천성과 호북성에서는 심심하면 내리던 비~ 여기서는 기다리고 기다려도 내리지 않았겠죠그렇게 마속은 가정에서하늘을 바라보며 비만 간절히 내리기를 빌었을 겁니다…… 불쌍한 마속ㅠㅠ


결론 및 요약입니다.


가정은 길목만 지키면 되는 곳이 절대 아닙니다. 가정으로 온 마속은 두가지 어려움이 부딪치게 됩니다. 첫 번째 가정성과북산을 함께 지키기는 매우 어려운 지형이며, 두 번째 가정 주민이 너무 비협조적이라 이러한 상황에서위나라 대군과 맞서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해 가정성을 포기하고 시야가 탁 트이는 남산을 선택합니다. 건조한기후에 익숙하지 않고 물이 풍부한 지역에서 자란 마속은 물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였고 더욱이 왕평과의 불화 속에 이미 촉나라 군대의 사기는 바닥을 쳤을 겁니다. 이때 이미 패배한 거죠.    


 


어쨌든 여기까지 제가 분석한 마속이 산으로 올라간 이유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조만간 영상으로도 만들어 삼국지기행 제제작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반론을 제시할 수 있는 질의사항에 대한 사전 답변입니다.


1. 이천년 전 지형과 지금 지형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천년 전 백두산과 지금의 백두산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요? 아 가정이라는 지역이 정말 중국에서 오지 중에 오지에 있습니다. 중국동부처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곳이라면 인정하겠지만 가정은 중국에서 전혀 개발되지 않은 곳입니다. 중국에서 그 흔한 기차역도 없는 곳이죠. 사람이 사는 곳은 차이가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지형이 변할 정도의 큰 차이는 없다고 봐야죠.


2. 오케이! 마속이 저러한 이유로 산에 올랐다 치자! 근대 이게 장합군을 궤멸시키기 위해서? 아니면 장합군을 저지시키기위해?


가정에 오고 가정성과 북산에 대해 답 없다고 생각한 마속은가정성을 가운데 두고 서로 북산과 남산에서 마주보며 대치전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물은포기한 이유는 이미 위에 충분히 설명했고 이 지역 주민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축구 경기장지역 주민들이 홈을 응원하지 어웨이를 응원하지는 않잖아요? 또한 제 글의 요점은 마속이 경험이 없고 아무 생각없이 산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올라갈만한 이유가 있어서 올라갔다 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분석이지 2번 질문을 알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마속이 살아돌아오지않는한.. 백날 토론해도 무의미합니다.  


3. 여기가 실제 가정 지역이 맞느냐?


맞습니다. 이주변에서 촉나라 병기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중국 자료를 찾아보면 가정 후보지가 다섯 곳 정도 되는데 현재대부분의 학자들이 이곳이 실제 가정 전투가 일어난 지역으로 사실상 확정 지었습니다.


  • BEST [레벨:19]엣쓰넷 2019.11.10 00:41
    답사까지 한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마속을 이해하려고 왕평을 너무 깍아내리는거 같습니다.
    제갈량은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스타일이었으니 현지 사정에 대한 조사를 했을거고, 왕평은 비교적 현지 사정에 밝은 사람이었는데 이들의 주장을 무시하고 현장에 가보니 내 판단으로는~ 하고 물도 없는 산으로 올라갔다는건데
    왕평과 마속이 대립해서 사기저하로 패전했다기에는 다른 여건들의 영향이 너무 크게 보입니다. 동서고금에 물없이 싸워서 이겼다는 이야기는 들은적이 없습니다.

    정사 왕평전 내용을 보면 장합의 군사가 마속의 진을 깨드리고 마속이 도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왕평이 천여명의 병사로 진을 지켜 장합은 혹여나 계책이 있을까 두려워 전략 목표를 달성했으니 물러나고, 왕평이 나머지 패잔병을 수습해서 돌아오는데 장군과 부장의 대립으로 사기가 저하되 일체감이 떨어졌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BEST [레벨:26]도궁도궁 2019.11.09 22:06
    성의 민간인들은 비협조적이고 양쪽 산은 군대가 충분히 넘어갈만하고 그러니 성먹으면 포위될꺼같으니
    마속이는 자기나름의 최고의 선택을 위해서
    남산올라서 장합한테 니가와시전했는데
    안타깝게도 물이 귀한지역이었고 10년 이상 주둔했던 장합이 그 약점을 간단하게 찌른듯
  • BEST [레벨:24]cd514 2019.11.10 00:51
    엣쓰넷 ㄹㅇ 마속을 재평가하는거 자체는 흥미로운 시도이고 글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왕평을 자꾸 곁다리로 까니까 좀 읽기 불편했음.
  • [레벨:10]토레스바보 2019.11.10 01:49
    답사를 왜 간건지 모르겠네 본인이 주장하는건 너무 마속 위주로 해석한거 같은데 이미 초장부터 마속 입장을 대변하니 너무 어거지임

    식량이야 본국에서 조달한다고 치지만 물은 현지 조달아님? 아무리 똥 멍청이라도 도착하면 군량을 처리하려면 물이 필요할테니 당연히 물을 구하려 했을거고 주변 식수를 파악했을텐데 마땅한 식수는 가정성이 유일했다면 왜 성을 버리고 남산에 진을 쳤을까? 반대로 위나라가 북산에 진을 쳤으면 물이 없는건 마찬가지고 수성 만 하는게 차후에 협공을 우려했다면 본진은 수성하고 후진을 남산에 배치해도 될일이라고 봄

    개인적으로는 마속이 방심해서 오로지 전투만 생각했고 지형상 수비하기 편한 남산으로 기어올라갔지만 영리한 조조군은 포위만하고 말려죽인것으로 보임

    아무리 봐도 마속은 쉴드가 안됌
  • [레벨:3]우비 2019.11.10 02:11
    답사 ㅇㄷ
  • [레벨:38]바르셀로나 2019.11.10 02:26
    결론이 이상한디
  • [레벨:3]아쿰 2019.11.10 02:27
    역사책에는 한두줄로 기억되어있지만 어떤 우여곡절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거잖음
  • [레벨:9]그치만오니쨩 2019.11.10 02:44
    답사까지 가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사진보니까 마속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네요.
    다만 패배의 원인 자체는 마속의 잘못된 결정인것 같습니다.
  • [레벨:19]귀앵두 2019.11.10 04:13
    오늘날과 비교는 좀 무리가 있는거같음
    개발이 되던 안되던 말이 1800년이지
    1800년정도면..
  • [레벨:8]극한의가성비충 2019.11.10 05:39
    근데 왜 진거?
    평가는 결과론적인거임 ㅅㄱ
  • [레벨:21]고랭지상추 2019.11.10 06:03
    그냥 전제부터 결론까지 다 이상한디... 답사가 아깝다
  • [레벨:26]코리시거 2019.11.10 06:43
    마속의 전략적 목표 - 이미 양주는 거진 항복했고 제갈량의 본대가 최종 접수 할 때까지 양주의 입구인 가정에서 시간만 벌기. 장합을 격파하라 이딴 건 바라지도 않았음. 그냥 가정성이든 북산에서든 포위되서 처절히 싸우더라도 아니면 가정성과 북산 양쪽에 진을 치고 각개 격파가 되던 오히려 양동 작전을 벌이던 최소 며칠만 더 버텨 주면 양주 접수한 본대가 와서 구원을 하든 마속 본인이 패퇴하면서라도 시간을 끌면서 합류를 하던 하면 될 일을 고작 사흘도 버티기 힘든 남산으로 겨 올라가....
  • [레벨:22]버키반스 2019.11.10 06:50
    펨코는 추천이 너무후하다
  • [레벨:12]착한말만해요 2019.11.10 09:34
    버키반스 충분히 줄만큼 재밌는 글이었는데
  • [레벨:23]eeune10 2019.11.10 07:59
    저기 가정 위치는 시진핑 아버지가 "여기가 가정이다"해서 비석 만든거여서 위치에대한 정확도가 떨어지고
    위치가 역사적이기보단 정치적 요소가 있을가능성이 있음
    2000년전이여서 그때 있던 강도 없어지기도해서 그때 지영이 남아있을지도 확실하지 않고
  • [레벨:22]꼬쏘한맛 2019.11.10 08:10
    ㄷㄷ
  • [레벨:3]우비 2019.11.10 09:22
    나도 답사 가보고 싶다 ㅠ
  • [레벨:12]착한말만해요 2019.11.10 09:34
    와 재밌게 잘봤습니다
  • [레벨:20]자유로운인 2019.11.10 09:51
    현장답사까지하고 거기서 삼국지전문가까지 만나 30분 인터뷰하고 애쓰셨네. 마속이 형주출신이라 물의 공급을 쉽게 생각했다 ... 그럴수도 있겠네요
  • [레벨:26]브락시스사령관 2019.11.10 09:57
    전개가 조금 ?가 들긴했지만 답사까지 가신 노력이 대단하십니다. 중국어도 잘하시나 보네요
  • [레벨:11]게겐노루 2019.11.14 13:02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근데 원래 시안에 사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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