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9 16:38

임진왜란 의병 이거 얼마나 맞는 소리임?

조회 수 31267 추천 수 138 댓글 119
1795bdcf74661f4b44662155095eff78.jpg 임진왜란 의병 이거 얼마나 맞는 소리임?

디씨 출처인데
  • BEST [레벨:24]Neri 2020.06.29 09:04
    좀 틀린말인게 의병 대다수가 제승방략 체계 밑의 정병들이었음 그냥 제승방략 체계로 모여서 중앙에서 지휘할 장수가 내려오면 그게 관군이고 장수가 안내려왔는데 유림이나 유력자가 규합하면 그게 의병인거임 ㅋㅋ 즉 무기를 구하기 어려운 농민들이 아닌 원래 가지고 있던 정병 중심이었기에 큰 문제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음 다만 다른 상민이나 천민들이 아예 안낀것도 아니어서 그럴경우나 다른 상당수의 의병들이 무기 부족에 허덕인것도 사실이라 어느정도 개인선에서 모아둔게 있을거같기도 함 경우가 좀 다르긴하지만 무인정사때도 무기 모으는게 금지였는데 원경왕후가 무기를 어느정도 모은기록도 있으니깐
  • BEST [레벨:24]네버고벡 2020.06.29 10:24
    Neri 니 말이 정확함
    저땐 병농일치가 기본이라 농사지으면 농부가 무기잡으면 병사였지
    무기질이 관리가 안되서 개판이었다 하더라도 니말대로 한양에서 무관이 내려오면 정규군이 되고 아니면 그냥 의병임
    국가 시스템도 그렇게 되어있으니
    임진왜란때 제승방략체계가 제대로 안돌아가니까 그걸 선비들이 그냥 한거임 자기들이 규합해서 무기고따고 들어가서 무기나눠주고 못나눠주면 낫들고 오라하고 그런거
  • BEST [레벨:4]김고촌 2020.06.29 10:39
    SHEEE 대륙이랑 만주랑 한반도 오가면서 살았습니다.
  • BEST [레벨:4]김고촌 2020.06.29 09:27
    저 당시에 경북 상주(당시엔 영남에서 꽤 큰 도시였음)에 봇짐장사하러 자주 다녔는데 산 타고 가다보면 병장기 들고 모여있는 사람들 여럿봤음. 뭐하는중인가 물어보면 자세히는 말 안해주고 얼버무리긴 했는데 딱히 뭐 훈련하거나 그래보이진않고 예비군가서 산탈때 시키니까 마지못해하는 그런분위기였던걸로 기억함
  • [레벨:22]우리가원하는건 2020.06.29 17:08
    블루피치 이게 왜는 전국시대가 오래되고 사무라이 아시가루들도 너무 많이 남음
    그리고 북방은 계속 여진이랑 전쟁중이고 임란때 누루하치가 강해지니까 북방정예병들을 빼지 못함
    사람들이 임란을 잘모르는것중 하나가 조선이 왜군에 몰빵을 못치는게 여진전선 왜쪽전선 2중전선형성임
  • [레벨:23]vlkjalkd 2020.06.29 19:37
    우리가원하는건 뭔 뜬금없는 소리야... 누루하치는 조선은 신경도 안썼고 오하려 병력 보내준다고 했고 걔들의 주된 관심은 요동이었음. 동북부는 니탕개가 한번 난리쳐서 발랐는데.

    북방이 병력 못뽑은 이유는 단순함. 평안도 쪽은 왜군이 몰려왔고 함경도도 왔는데 어찌어찌 막았거든?

    근데 임해군 순해군 이 싸이코패스들이 병력 모으러갔다가 삽질해서 반란 일어나고 왕자들 왜군에게 넘겨버림.
  • [레벨:22]우리가원하는건 2020.06.29 20:12
    vlkjalkd ㄴㄴ
    누루하치가 도와 준다고 했을때 조선 조정도 비상이지 누루하치급으로 커진 세력이 없었으니까?
    누루하치가 도와준다고 했을때 뭔 듣보잡 새끼가 깝치냐 했는데
    누루하치쪽 이랑 사신들도 왔다 갔다 하고 보고 들은 결과
    이새끼들 내려오면 개좆 된다라고 판단함(이떄쯤 누르하치한테 몇만에 기마군단이 있을떄임)
    그리고 이여송도 얼마안가 짤렸고
    왜군이야 보병으로 올라오는것에 한계있는것도 파악됐는데 얘네는 기병대임
    그래서 평안도 부대는 계속방어 항왜 대다수(항왜만 만명 넘음)도 평안 여진 전선으로 보내버리고 누루하치쪽말고
    다른부족을 조선군이랑 항왜들로 섬멸함
    하지만 선조도 돌아 버리겠는데 부산쪽만 있지만 왜군도 짱박혀 있고 위에는 듣보잡새끼가 존나 세력이 쌔지는데
    얘들이 후장을 치면 도망도 못가고 좆되거든(40년 뒤에 좆되지만)
  • [레벨:23]vlkjalkd 2020.06.29 21:42
    우리가원하는건 그러니까 양면전쟁이고 이런건 허구라고. 애초에 다 꼴아박았음. 임진왜란은 어찌 버텼어도 정유재란은 명나라 돈 명나라 군사 아니었음 답 없었다.

    그리고 누르하치는 신경쓸 상황도 아니었음 조선은. 당장 대가리 깨지게 생겼는데. 이야송이 짤렸다고 해도 금방 복귀했던 것처럼 고놈 짤린다고 요동의 이씨 세력이 흩어진것도 아니었고.
  • [레벨:22]우리가원하는건 2020.06.29 22:24
    vlkjalkd 이여송 짤리고 복귀 안했음 93년 회군하고 짤리고 유정이 후임이되고 명군은 유정부대만 남고 다돌아감
    중앙군으로 갔다가 좌도독으로 갔다가 다시 요동 총병으로 몽고애들한테 죽었지
    그리고 여진족은 언제나 제1신경 쓰는곳임
    우선 명군은 유정부대 뺴고 다집에 가버렸지 이여송은 중앙으로 가벼렸지 근데 유정은 남쪽애지
    그러면 북쪽은 조선군이 알아서 해야됨
    항왜들 전부 평안도 보내서 여진족이랑 싸운 것 조선이고 조선도 여진 왜놈 쌍으로 신경써야되는 상황임
  • [레벨:23]vlkjalkd 2020.06.29 22:29
    우리가원하는건 요동총병으로 복귀한거 맞자너. 내몽골이 위급해져서 거기 배치된거지.
    근데 뭔 양면전쟁이야. 여진족이랑 조선이랑 임진왜란 정유재란 기간에 싸운게 있음?
    여진족을 경계했다면 대체 무슨 부대가 한거임?
    그것만 말해주면 되자너.
  • [레벨:22]우리가원하는건 2020.06.29 22:55
    vlkjalkd 1594년 함경도에 조선6진에 있는군이랑 항왜로 여진을 공겼했어
    이건 토전사 왜란편에 나올거야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0215026003

    서울신문 기사인데

    1.조선에 들어왔던 명군 지휘관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누르하치 군대의 ‘위력’을 이야기했다.

    ‘그들 기마군단의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일본군에게 밀리면 도주하면 되지만, 누르하치 군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선조와 조정은 바짝 긴장했다.

    와중에 1595년(선조 28), 산삼을 캐기 위해 평안도 위원(渭原)으로 잠입했던 건주 여진인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이 조선 영내에서 소를 훔쳐가자 위원 군수 김대축(金大畜)이 여진인을 사로잡아 죽인 것이었다.

    조선 조정은 이 사건 때문에 누르하치가 침략해 오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실제로 누르하치가 격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같은 해 10월, 선조는 신료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올 수 없었다. 모든 역량을 동원해 일본군과 맞서고 있는 현실에서 서북변 방어는 거의 방치돼 있었다. 그렇다고 남방의 병력을 빼서 서북쪽으로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2. 신충일의 보고서를 본 뒤 선조는 “천지의 기세가 바뀌고 있다.”며 탄식했다. 이어 신료들에게 누르하치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북쪽의 ‘오랑캐’, 남쪽의 ‘왜구’ 이른바 북로남왜(北虜南倭)에 의해 포위된 조선의 현실을 새삼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선조는 누루하치에 대해서ㅎㄷㄷ 하고 있었음
  • [레벨:22]우리가원하는건 2020.06.29 23:06
    vlkjalkd 토전사 누루하치편 보면 누루하치가 ㅎㄷㄷ한존재인걸 알게됨
  • [레벨:23]vlkjalkd 2020.06.30 00:21
    우리가원하는건 그러니까 양면전쟁이 어디있냐고...

    누르하치 경계한건 나도 알고 그래서 병력보낸다고 깝칠때 헛소리 말라고 한거 다 알자너

    올려준 기사에도 서북면은 방치되어 있다고 나오네

    니가 올려준 기사대로라면 여진때문에 왜군에 몰빵을 못치는게 아니라 서북은 걍 비었단건데?
  • [레벨:22]우리가원하는건 2020.06.30 01:01
    vlkjalkd 1594 10월11일에
    함경북도 병마 절도사(兵馬節度使) 정현룡(鄭見龍)이 치계(馳啓)하였다.
    영건보(永建堡) 휴악(鵂嶽) 부락(部落)에 이거(移居)한 반추(叛酋) 이라대(伊羅大)의 심복인 거추(巨酋) 역수(易水)가

    석성(石城)을 높이 쌓아서 적(賊)의 소굴을 만들었는데 오랑캐 중에 가장 강하여, 홀자온(忽刺溫)·도즐동(都叱洞)·니사은(尼舍隱) 등과 같은 곳의 우지개(亐知介) 등이 비록 백 배의 군사를 동원하여 포위하고서 여러 날을 공격하여도 함락하지 못하고 항상 패퇴(敗退)를 당하기 때문에 이 소굴을 거점으로 한 이후로는 더욱 흉모(兇謀)를 부려 스스로 웅장(雄長)이라고 하면서 다시 귀화(歸化)하지 않은 지가 여러 해 되었습니다.

    임진(壬辰)의 변란의 틈을 엿보아 해를 끼치려는 계책을 하였습니다. 각진(各鎭)의 병력이 그때만 해도 아직은 당당하였기 때문에 감히 침범해 들어오지 못하다가, 지난해 기근과 전염병을 치른 뒤에 반적(叛賊)의 잔당이 들어와 난동을 부리자 역수(易水)가 갑자기 비적(匪賊)의 마음이 생겨서 이라대(伊羅大)와 안팎으로 체결(締結)하여 원근의 여러 종족을 불러모으고 홀자온(忽刺溫)까지도 연결하여, 동관(潼關)을 수호(守護)하는 농민을 연속하여 약탈하고 영건보(永健堡)와 미전진(美錢鎭)의 성을 계속하여 포위하니, 각 지역의 오랑캐 추장이 모두 덩달아 준동하였습니다.

    영건 보가 포위된 뒤에 책략을 세우고, 포획할 뜻을 겸 순찰사(兼巡察使) 이희득(李希得)에게 이미 통문(通文)하고 그 사실을 대강 치계하였으나, 병마(兵馬)와 성지(城池)가 번종(藩種) 중에서는 가장 강하고 험하기 때문에 속히 주토(誅討)를 하지 못하였는데, 경원(慶源) 지경의 거추(巨酋)와 다호리(多好里) 등의 부락을 탕멸(蕩滅)한 뒤로 병사들의 위엄이 약간 진작되어 사기가 백배나 올랐습니다. 은밀히 여러 장수에게 분부하여 각자 거느린 군사 도합 1천 3백 25명과 항왜(降倭)359) 25명을 모두 종성부(鍾城府)의 동건(童巾) 덕하동(德下洞)에 모이도록 하여 병마를 쉬게 한 뒤, 여러 장수와 약속하여 병사들은 하무[枚]를 물리고 말은 입을 얽어, 길을 나누어 진격해서 역수(易水)의 상·중·하의 부락을 일시에 포위하였습니다.

    그들은 문 양편에 기를 세우고 화살과 돌을 쏘고 던져대어 누구도 감히 접근할 수가 없었는데, 항왜 등은 화살에 맞거나 돌에 맞아 발을 붙이지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위장(衛將)과 계 원장(繼援將) 등이 또 아군 중에 건장한 자를 거느리고 독려해서 성(城)을 뚫도록 하였는데 성 위에서 화살과 돌이 비오듯하여 역시 성을 헐지 못하고 퇴각하였습니다. 그러자 성 안에서는 적의 무리가 피리를 불고 북을 울리면서 칼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는데 군정(軍情)이 해이된 듯하였습니다. 여러 장수가 일시에 칼을 빼어들고 독전하여, 명을 따르지 않는 자 한 명을 목베어 군중(軍中)에 돌리니, 아군은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개미처럼 달라붙어 진격하여 다투어 성의 돌을 뽑아내 한 식경(食頃)만에 깨뜨렸습니다. 사졸(士卒)중에 재빠른 자들이 칼을 휘두르며 돌입하니, 오랑캐들은 성벽 남쪽까지 밀려가 추락한 자가 부지기수였으며, 성 가운데 굴에는 쌓인 시체가 한 길을 넘었습니다. 세 부락의 오랑캐를 일시에 섬멸하여 한 놈도 남은 자가 없고, 아군은 한 명도 죽은 자가 없이 2백 66명의 수급을 베어 전군이 개선하였습니다. 지나는 부락마다 목을 움츠리고 바라보는 자들이 모두 혀를 내둘렀으며, 승리의 소리가 미치는 곳이면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국가의 수치를 크게 씻고 아울러 변방 백성의 원한을 모두 풀었으니, 이번 거사의 승첩은 모두가 묘산(廟算)360) 에서 나온 것입니다. 북비(北鄙)의 안정이 이로부터 시작된다면 풍패(豊沛) 옛 고을의361) 왕령(王靈)이 진작됨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니 변방의 백성의 다행함이 한이 없습니다.
  • [레벨:25]영단어그만 2020.06.30 11:25
    우리가원하는건 이런거 어디서 자료가져오심?
  • [레벨:22]우리가원하는건 2020.06.30 11:49
    영단어그만 조선왕조실록 검색하면 실록 볼수 있음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do
  • [레벨:22]우리가원하는건 2020.06.30 01:15
    vlkjalkd 서북쪽은 동북쪽은 언제나 상시 병력은 만명이상임
    1593년1월 병력 현황에서
    <평안도> - 17,903명
    순안현(順安縣) 절도사 이일(李鎰)의 군사 5680명
    법흥사(法興寺)에 좌방어사 정희운(鄭希雲)의 군사 2273명
    의병장 이주(李柱)의 군사 370명
    소모관(召募官) 조호익(曺好益)의 군사 3백 명
    용강현(龍崗縣)우방어사 김응서(金應瑞)의 군사 7770명
    조방장 이사명(李思命)의 군사 1090명
    대동강 하류 수군장[舟師將] 김억추(金億秋)의 군사 420명

    <함경도> - 10,200명
    함흥부(咸興府) 절도사 성윤문(成允文)의 군사 5천 명
    경성부(鏡城府) 평사(評事) 정문부(鄭文孚)의 군사 5천 명
    안변부(安邊府)·별장(別將) 김우고(金友皐)의 군사 1백 명
    조방장 김신원(金信元)의 군사 1백 명

    평안 함경 병력만 2만8천인데 저떄 병력의 전라 경상도의 10만명(의병 수군2만포함) 한양포위하고 있는 2만명 빼고(행주대첩 1달전 당시 조선군은 한양포위 전라도군 8천이 경기도에 있음)

    저기 인구도 적은데 오히려 충청 황해도 보다 병력이 많은 편임
  • [레벨:23]vlkjalkd 2020.07.01 12:57
    우리가원하는건 잘봐봐. 니가 말하는게 되게 그럴듯한데 문제는 여진족 기본 구성도 안나뉘어져있자너.

    올려준 자료를 보면 평안도 순안현 같은데는 쉽게 말해 평양근처 경기도 같은데고, 여기랑 누르하치의 요동이랑 먼 상관이냐.
    용강현도 대동강 하류 지역이자너. 누루하치 대비 분포라면 적어도 압록강 주변 배치되어야 정상 아니냐? 조선 혼자 싸우는거면 몰라도 요동은 아직 명나라 땅인 상태였는데?

    니 말대로라면 국경에 배치되어서 왜군이랑 못싸워야 하는데 저건 걍 왜군 대비 배치자너.

    평안도는 그렇다고 하고 함경도를 보자.

    누르하치가 위급하다고 했지? 누르하치 무슨 여진이지? 요동 중심의 건주여진(이넘들이 유목민족이라 이동이 잦긴한데 이건 머 연구가 다 있어서 연도별로 이동한게 있으니).
    여진이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는건 잘 알테고 그중에 해서는 건주여진에 복속되었고 야인은 반발했지?

    니가 올려준 자료에서 영건보 저기가 두만강 하류 너머 만주 저 북쪽으로 살던 야인여진 진격로인데...(지도상으로 보면 두만강 하류 꼭지점 지역)
    쟤네 누르하치랑 반발한 애들이자너. 저 시대 야인여진 넘들이 계속 난리친게 저쪽 지역임. 지금은 러시아에 붙어버려서 찾을 수 없는 녹둔도라던가. 죄다 두만강 최하류지역.

    욜려준 도표 볼까? 함흥부 여긴 함흥시 지역인데 ... 여기서 여진을 대비한다고;;;? 평양에서 여기 가는 거리 두배쯤 더 가야 두만강 도착해.
    안변부야 원산이니까 함흥시보다 더 남쪽에 있는 곳이고.
    그럼 경성부 그러니까 함경북도 5천 병력이 남는건데.. 사실상 이게 여진 대비 병력이지. 니가 올려준 자료에서 보면.

    누르하치에 대한 견제보다는 기존의 6진에서 귀부해 살던 여진 추장+ 귀부안한 여진 추장들 견제했다면 니 자료가 설득력이 있겠는데
    이걸 뭔 조선이 누르하치를 견제해서 양면전쟁이 어쩌고 하는건 과장인듯 싶다.
  • [레벨:2]요기도기요 2020.06.29 17:24
    지금이나 그때나 윗선은 무능하고 밑에것들은 우매함
  • [레벨:25]영단어그만 2020.06.29 17:46
    요기도기요 뭐 현 미국만 봐도 ㅋㅋ 어느나라나 마찬가지인듯 윗대가리가 무엇보다 중요함
  • [레벨:22]급하니까피까츄 2020.06.29 18:23
    예비군이었네.

    역시 예비군이 무서워요. 헐렁해 보여도 할 땐 빡시거든.
  • [레벨:24]매치 2020.06.29 18:44
    정여립 선생님 왜군 대비하시던거였구나
  • [레벨:23]펨붕이(불속성) 2020.06.29 19:44
    저때는 농기구만 갖춰도 걍 병사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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