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소전에서 가장 길고 처절했었던 포위전이자 수십만의 아사자를 내었던 레닌그라드 공방전.
이 전투는 끝끝내 소련의 승리로 끝났고 아직까지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시민들에게 자랑거리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 전투를 지휘한 사람은 누구일까?

콜라 드쉴?
대다수가 주코프가 이 전투를 지휘했다고 대답할것이다.
이 대답은 맞긴 하다.
주코프는 41년동안 레닌그라드방어선을 완벽하개 구축하고 독일군을 막아냈다.
하지만,주코프는 41년이후 레닌그라드에서 떠났고 그후로는 다른 장군들이 레닌그라드의 방어를 지휘했다.
주코프 혼자서 다한건 아닌셈이다.
그렇다면,주코프 후임으로 레닌그라드 공방전을 지휘한 사령관은 누구일까?

바로 이사람,키릴 메레츠코프이다.
얼굴이 맹해보여서 관상은 원균이지만 이사람은 실제로는 매우 유능해서 41년말부터 레닌그라드 공방전을 담당해 포위망을 뜷어냈고 다른 전장에서도 활약했으며,사후에도 소련군의 영웅으로 그의 이름을딴 거리가 있을정도로 기려지고있다.
과연 이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소련의 영웅이 된걸까?지금부터 알아보자.

1897년 6월,메레츠코프는 랴잔주의 살라이스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4년 1차대전이 발발하자 처음엔 러시아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옛날부터 공산주의 지하모임에 가입했던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1918년 적백내전이 발발하자 참모장으로 적군에 입단했고,최전선에서 싸우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소련군은 그를 육군대학에 입단시켰고,그는 21년에 육군대학을 졸업했다.

메레츠코프는 육군대학을 졸업한후 21년부터 23년까지는 벨라루스나 돈강유역을 돌아다니며 사단 참모장 역할을 수행했다.
거기서 잘했는지 24년부터는 모스크바로 영전가서 제1참모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그후 그는 32년부터 다시 극동이나 벨라루스로 보직이동되었고,36년에는 스페인 내전때 공화파 지원병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이때당시 소련군 파견부대는 거의 대다수가 유망주들로 구성되었었는데,이때 메레츠코프가 파견된것을 보면 그가 소련에서 기대를 받는 유망주였다는걸 알수있다.

ㅎㅎ 렙업 잘하고왔다...어?
그러나 그가 귀국했을때..

너숙청

야이 씨발놈의 콧수염쟁이야

당시 소련은 스탈린이 권력강화를 위해서 군부를 대숙청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유능하거나 고위직이었으면 거의 무조건 숙청대상이었고,메레츠코프는 돌아오자마자 바로 굴라그에 끌려갈 위기에 처한다.

ㄷㄷㄷ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안죽여 새꺄 너승진

엥?
그러나 스탈린은 그를 좋아했는지 아니면 얼굴만보고 바보라고 생각한건지 그를 살려줬고 오히려 메레츠코프를 레닌그라드 군관구 사령관으로 승진시켰다.

그런데 그가 부임하자마자 겨울전쟁이 발발한다.
그는 급하게 7군의 지휘를 맡았고,초기에는 핀란드 방어선을 돌파해낸다.

올ㅋ 쉽게 이기겠네

(핀란드군 총사령관 만네르하임)
잠깐!

당신의 군대,동태로 대체되었다.

뭐야 시발 돌려줘요
...하지만 핀란드군은 경악스러운 전투력을 발휘하며 모티전술로 동계장비도 안갖춘 소련군을 유린했고,결국 메레츠코프는 대참패에 경악한 스탈린에게 해임되었고 핀란드군 총사령관 만네르하임에게는 '손발이 안맞는 오케스트라'라는 혹평을 들었다.

하지만 이건 메레츠코프만의 잘못이 아니라 오히려 스탈린의 잘못이었다.
그는 핀란드를 얕보아서 동계장비나 충분한 탄약조차도 안주고 공세를 감행했고,게다가 대숙청으로 유능한 장군들을 몽땅 숙청해버려서 일선 병사들은 사실상 지휘자가 없이 공격하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메레츠코프는 팔다리 짤린상황에서 싸워야했던 것이다.
스탈린도 자기땜에 ㅈ망한건 알았는지 다시 그를 7군 사령관에 임명하고 상관으로 숙청에서 살아남은 셰몬 티모셴코를 임명해 대폭 지원해주었다.

그리고 메레츠코프는 이번엔 핀란드군을 갈아마시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결과 그는 소비에트연방영웅이 되며 최고의 명예를 얻었고,참모총장에도 임명되었다.
비록 참모총장 직위는 40년에 주코프로 교체되었지만,그는 소련군 최고지도부인 '스타브카'의 일원으로 남아서 계속 소련군을 지도했다.

그리고 41년 6월,독소전쟁이 발발했다.

어...일단 전략적 후퇴하라.
그는 군사령부 고문으로 임명되어 소련군들의 재편성과 반격준비를 담당했고,어느정도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너숙청

씨발
그는 NKVD 최고지도자인 베리야에 의해 반역혐의를 받아 투옥되었다.
소련군의 참패만하자,그가 희생양으로 책임을 전가받은 것이다.
그는 10월까지 고문당하며 갇혀있다가 간신히 스탈린의 명령으로 풀려난다.

베리야 개객기 ㅅㅂ 쨌든 풀려났으니 뭘해야하지?

마!레닌그라드 와라! 내가 이미 방어선 다 만들어놨다!
그리고 그는 레닌그라드 부근의 볼호프 전선군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티흐빈까지 진격해온 독일군을 격파하고,기습적 공세로 레닌그라드에 물자를 공급하고,독일군을 후퇴시켰다.

이것은 의미가 컸던게 독일군이 소련혁명의 심장이자 소련 제2도시였던 레닌그라드를 점령하는걸 막아내었고,아직 대피못한 레닌그라드 시민들을 소개시키고 식량과 군수품을 보급해서 레닌그라드의 식량사정과 전투력을 안정궤도로 돌려놓았다.

게다가 당시는 모스크바 공방전이 진행중이던터라,메레츠코프가 북부전선의 독일군을 잡아준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그덕분에 모스크바는 중부전선의 독일군과만 싸울수 있었고,모스크바 방어에 성공했다.
메레츠코츠가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를 살린 셈이었다.

그리고 42년이 되자,메레츠코프는 한동안 한타를 모으는데만 집중했다.
레닌그라드의 독일군은 알보병뿐이긴 했으나 전투력은 여전히 강했고,그때문에 어느정도의 전력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43년 말부터 그는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다.

(북쪽 빨간색이 그가 탈환한 구역)
압도적인 물량과 장비를 기반으로 한 공세에 독일군은 맥없이 패퇴했고,그는 레닌그라드와 노브고르드를 해방했다.

핀란드 꼼짝마. 핀란드 까불면 나에게 죽어.

아 ㅅㅂ
그리고 그는 연이어서 핀란드 대공세에 나섰다.
그에게는 복수전이기도 했다.
그는 한달도 안되어서 핀란드군을 본래의 자리로 몰아넣었고,버티지못한 핀란드는 소련과 강화했다.
이 공로로 그는 소련군 원수가 되었다.

복수에 성공한 메레츠코프의 다음목표는 발트였다.
그가 직접관여하진 않았지만,그의 도움으로 레닌그라드 전선군의 사령관인 고보로프는 독일 북부집단군을 몰아붙였고,발트지방을 탈환하고 북부집단군을 포위했다.
이후,독소전 종전시까지는 메레츠코프가 딱히 맡은일은 없었고,노르웨이 지역의 독일군을 소탕전도만을 했다.

그러나 종전후 그는 곧 1극동전선군에 임명된다.
소련군은 이때 일본군이 지배하던 만주를 공격하기로 했고,그래서 소련군에서 가장 유능한 그를 일선 지휘관에 임명한 것이었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

쑤까 블럇(탕탕)

데갸악!
그리고 그는 압도적인 기동전으로 일본군을 절멸시키고 한반도까지 진격했다.
그의 부대는 가장 일찍 평양을 점령했다.
이때 나비효과가 하나 일어나는데...

잘해낼수 있지?

물론이죠 헤헤
이반 치스타코프를 조선 군정사령관에 임명한 것이었다.
그 결과,북한은 치스타코프의 비호아래 김일성이 집권하게 된다.
사람한명 잘못 임명해서 한국전쟁의 도화선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어쨌든,그는 그후 소련의 영웅으로 여러 군내 고위직을 역임하다가 68년에 사망했다.
그의 시체는 크렘린에 매장되었다.

메레츠코프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독소전쟁 당시 소련의 일등공신중 하나이다.
그가 아니었으면 레닌그라드는 독일군의 손에 넘어갔고,독일 북부군은 모스크바로 방향을 돌려서 모스크바가 큰 위기에 처했을것이다.
그가 있었기 때문에 소련은 41년에 멸망하지 않을수 있었다.
또,그는 그후로도 레닌그라드를 해방하고 핀란드를 쥐어패거나 일본군을 섬멸하는등 패배한번없는 삶을 살았다.
그 주코프도 로코솝스키도 한번씩은 대패한적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소련군에서 거의 유일한 불패지장이었고 그덕분에 소련은 승리할수 있었다.
그는 2차대전 최고의 명장이라 불릴 자격이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김일성 집권의 단초를 준건 개같지만 말이다.

씨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