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1 22:38

중세가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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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냐 헬조선도 지옥이고 중세도 지옥 맞아^^ 

중세가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 뿐이라고?야레야레~ 이런 진심 배틀액스라니 쇼가나이나~ 죽어줄 수 밖에~




   지난번에 내 글에 달린 무수히 많은 비난의 댓글들은 내가 예술작품에다가 먹칠을 했기때문에 앵간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댓글을 쳐단애들 때문에 대충 휘갈겨 쓴 글임.


   애초에 대충 과장하고 왜곡해서 쓴건데 거기에 대고 무슨 19세기적 사고방식이라느니 중세가 지옥이라고 생각하는건 나뿐이라느니 진지빨고 헛소리들을 하시길래ㅇㅇ 진짜 역사적 지식을 쌓고 싶으면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커뮤니티 글이나 좆무위키 쳐보고 아는 척 하지 마시고 개론서 연구서 논문을 보세요 내글은 역사 반 과장 반이니까 읽기전에 참고하시고



두 줄 요약:

중세는 퇴보 일변도의 암흑시대였는가?  X -> 비약적 발전이 있던 진보의 시대였다 O

중세는 살만한 시대였는가? X -> 지옥이었다 O






   암튼 인터넷엔 서양중세가 암흑시대가 아니었다는 그런 얘기만 주워 쳐듣고 중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글 쓰면 개거품 무는 찐따들이 진짜 존나게 많다는 걸 느꼈다. 그런건 학술적인 영역에서나 "흠..중세는 퇴보하던 암흑의 시대였을까? 아니야 중세와 르네상스의 연결에 더 집중을 해야해. 중세는 보존과 발전의 시대지 암흑 일변도의 시대가 아냐" 이런 소리하는 거고 솔직히 현대를 사는 우리 입장에선 중세는 걍 아프리카 씹오지만도 못한 지옥 그 자체의 역사가 맞다고. 


    애초에 중세라는 용어 자체가 르네상스와 단절되었단 의미로 어떻게 보면 발명된 용어인거고 그걸 그대로 계속 쓰느라 문제가 생기는거지 우리가 대충 아는 그 중세 언저리, 그러니까한 6세기에서 14세기 정도 그 즈음의 역사를 보면 존나 좆같이 살기 힘든 시대가 맞지. 중세초는 말할것도 없고 중세 말도 살기 좆빠지는 시대임. 


그러니까 중세는 애초에 있지 말았어야할 별 의미도 없는 암흑시대였다 이런 소리가 학계에서 사장되었단 거지, 무슨 중세는 생각보다 먹고살만한 시대였다 이런 소리가 아님. 물론 이것도 구분이 몇개가 있는데 자크 르 고프 할배처럼 중세를 길게본다면, 


4세기에서 9세기의 중세초: 그냥 세상이 무너지던 

10세기에서 14세기: 엄청난 발전과 발명과 대비약이 이루어지던 

14세기~16세기 위기의 시대: 흑사병 어어 신대륙이다 


뭐 대충 이런거지.  





중세가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 뿐이라고?

말 나온김에 자크 르 고프 할배의 명저, 『서양중세문명』의 일부를 보자.



일단 일상적 기근


기근은 로마시대에도 있었음. 생산성 저조했던 건 고대도 마찬가지였거든. 근데 관리된 도로망, 통신망, 통일된 행정 체계가 그나마 잘 기능을 했기때문에 잉여 생산물을 식량이 부족한 지역에 수송하는 능력이 어느정도 됐음. 


근데 중세엔 그런거 없었음. 


"수송과 도로망은 미흡했고, 관세 장벽만 수없이 많았다. 예컨대, 노상 강도나 해적을 꼽지 않더라도 모든 다리와 의무적으로 통과해야 되는 요충지마다 소영주들이 관세와 통행세를 부과했다." - p.280 


그러니 기근 한번 벌어지면 바로 지옥도가 연출되었고, 기근이라는 게 꼭 가끔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라 연타석으로 날때도 있고 계속해서 몇년간 지속될때도 있고 그런데 그런 때에는 구덩이 파서 시체 500구 한번에 묻기도 하고 길거리 사람들 피부는 썩어서 늘어지고 목소리는 괴물처럼 그르렁거리고 그랬다고 함. 식인도 일상이었고 시체 파헤쳐서 먹기도하고ㅇㅇ

글고 지난 번에 또 댓글에서 누가 피리부는 소년은 독일인데 왜 이탈리아 사례 드냐고 했던거같은데 독일이든 이탈리아든 애초에 피리부는 소년이야기는 전설이고 제노바에서 식량 부족 일어나서 빈민들 전부 선동한다음에 사르데냐에 떨궈서 다 굶겨 쳐죽여버린것은 사료가 있는 팩트기 때문에 자크 르 고프 할배가 예시 삼아서 피리부는 소년 이야기를 한 것이에요. 그니까 뇌터진 소리하지마셈.


전염병


기근이 있으면 세트로 따라오는 게 전염병이지. 전술했듯 사람들이 인육 포함해서 별에 별걸 다주워먹게 되다 보니까 기상천외한 전염병에 갑절로 더 많이 걸리게 되었음. 곡식도 좀 색깔 이상하고 그러면 아무리 친환경농법이라도 앵간 이상하면 떼고 다른 부분 먹던가 해야하는데 당장 아예 먹을게 없는데 뭐 어쩌겠어


그러다가 좀 상태 이상한 호밀 먹어서 맥각병같은거 걸리고 그랬던거임.

"서양에 단독균의 침입, 기근, 소동과 환각을 일으키게 했던 맥각병, 성 안트완 추종자들의 행동, 십자군에 대한 민중적 열기 등 이모든 것들이 한데 뒤섞여 중세 서양은 육체적 경제적 사회적 질병과 극에 달한 혼란과 영적인 반작용 속에 휩싸이게 되었다." - p.288


여기서 간단하게 맥각병 걸리면 환각일으킨댔는데, 이게 사실 LSD임ㅇㅇ 60년대 미국 히피들이 빨던 그 LSD가 원래 맥각균에서 나온거. 


성자 안트완(안토니오. 사막의 성자로 유명한데,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며 수행을 했다고 함. 채찍질 고행과 연관이 있다던데 자세히는 나중에)  등등의 유골이 맥각병을 치료한다는 이야기에 온갖 병자들이 순례길을 떠나기도하고(그래서 맥각병이 성 안트완의 불이라고 불리기도 함.), 십자군에 참여하기도 하고 난리도 생난리가 아니었음. 


생 안트완 비에누아 수도원 병원 별명은 그래서 사지가 없는 자들의 병원이기도 했고, 그럼. 근데 병걸려서 고행하는 사람들이나 이 사람들을 선동해서 십자군에 참전시킨 설교가나 따지고 보면 되게 안타까운게, 퓔크 드 뇌이라는 어느 십자군 설교가는 원래 기근의 참상을 보고 고리대금업 하는 10새끼들이나 식량 매점매석자새끼들 호통치고 그러던 사람이었음. 근데 이 설교가 말 듣고 십자군 갔던 병자들의 최후는 대부분 뭐... 


예외적인 재앙기가 아닐때에도... 돌팔이 노파의 비결과 현학자들의 이론 사이에서 자체의 근거를 찾기 힘든 음식의 조잡함과 의학의 낙후성은, 오늘날 후진국의 특징인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육체적 비참함과 높은 사망률을 초래했다. 평균 수명은 무수한 유산과 높은 유아 사망률 등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 하더라도, 매우 짧았다.  (30세를 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40세는 사려깊은 나이, 50세는 위대한 나이로 지칭되었다.) - p.288



피부병

종양 탄저병 옴 궤양 종창 암종병 습진 단독 연주창 등이 종교 관계 문헌의 세밀화에 많이 등장한다. - p.289

설명 생략. 아, 연주창은 특히 프랑스 왕이 연주창을 '터치' 해서 치료할 수 있다는 전승이 있어서 병자들이 수도로 몰려가서 왕한테 '만짐' 당하는 그런 전통이 있었는데 마르크 블로크의 『기적을 행하는 왕』이 이것을 주제로 하는 명저.



결핍병과 기형병

중세가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 뿐이라고?The Blind Leading the Blind  by Pieter Bruegel the Elder, 1568
중세 서양은 브뤼겔의 끔찍한 그림에 묘사되어 있듯이 눈이 파이고 눈동자가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맹인들로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불구자들이며 꼽추들이며 갑상선 환자들이며 절름발이며 중풍 환자들로 가득했다. - p.289

저 위 그림이 자크 르 고프 할배가 말하는 그림. 그림 보면 되므로 설명 생략.



정신질환


현대사회에서도 정신병은 크나큰 문제인데, 이런 극단적인 상황속에서 안미치고서 배겼을까? 정신병은 고생을 안해봐서 생기는 거라느니 씹소리하는 애들은 너무 힘들었던 중세에도 정신질환자들은 넘쳐났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할것임.

맥각병 걸리면 환각본다는 건 아까 말했는데 그것 말고도 성 요한병(간질병) 생-귀이 무도병 등등이 있었음. 그리고 지금은 5인이상 집합금지라던데 중세시대애들은 집합금지명령 그딴것도 없었고 줄줄이 열맞춰서 등판에 채찍질하고 십자가 짊어지면서 계속 시끄럽게 회개하라고 소리지르면서 막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했음. 걔네들 때문에 건설 현장에서 돌나르던것도 중지될 때도 많았고. 


영양실조. 질병으로 인한 환각. 피부병. 그냥 정신병. 거기다가 집단 히스테리. 그런 시대였음. 기근 있을 땐 더했고, 기근 없을 땐 덜했겠지만 그냥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일상 아주 가까이에 있던 시대였음.  

솔직히 이게 지옥아니면 뭐가 지옥임? 



아 근데, 또 여기다대고 눈치없는 찐따마냥 그럼 지옥 아닌 시대가 어딨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는데 걍 인간세상 자체가 지옥이라고 하고 시대별로 조금씩 장르가 다른 지옥들이라고 정의내리자 그럼. 아무리 헬조선이 좆같아도 내일부터 당장 아프리카 오지(혹은 중남미 마약굴 빈민촌 파벨라 길거리 한구석)에서 살라고 거기 한복판에 떨궈놓으면 눈물흘릴거면서. 걍 중세가 그런데랑 비슷했다고.





참고:  서양중세문명 - 자크 르 고프


"게르만족과 더불어 시작된 중세를 누가 감히 이상적인 시대로 보겠는가? 계몽 시대와 더불어 끝난 중세가 대대적인 진보의 시기였음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장기적 중세는 한 시대의 포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기근과 대역병과 빈곤과 장작의 시대일 뿐만 아니라, 성당과 성채의 시대요 도시며 대학이며 노동이며 포크며 모피며 태양계며 피의 순환이며 관용 등을 만들어내거나 발견했던 시대이다."

- 자크 르 고프, 장기적 중세를 위하여.



  • BEST [레벨:21]식별불해 2020.12.21 21:46
    리센츠12평오너 지난번 글에서 댓글로 말했다시피 님이 첫번째로 댓글달아서 포텐 다드리겠음. 포빨려고 별지랄을 다한대서ㅋㅋ
  • BEST [레벨:23]말종알바한테찍힘 2020.12.21 22:42
    암튼 인터넷엔 서양중세가 암흑시대가 아니었다는 그런 얘기만 주워 쳐듣고 중세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글 쓰면 개거품 무는 찐따들이 진짜 존나게 많다는 걸 느꼈다. - 개공감 멘트. 진짜 이게 사람 대가리에서 나오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단순무식한 개소리하는 빡대가리들 겁나 많음.
  • BEST [레벨:37]리센츠12평오너 2020.12.21 21:48
    식별불해 미갤도 그냥 움짤하나로 포빨려는 애들 넘 많아서 너처럼 고생하는 애들 힘든거 다암
    조빠지게 글썻더니 댓글로 염병떠는거 포는 괜찮고 글 재밌는거 많이 써주면 댐
  • BEST [레벨:37]리센츠12평오너 2020.12.21 21:45
    어우야 댓글로 조리돌림당하고 고생이많네 ㅊㅊ줌
    커뮤니까 그냥 그려려니 하셈 그게 마음편함
  • [레벨:2]마엑다 2020.12.22 00:02
    파르티아 ㅋㅋㅋㅋㅋ 중세의 기준이 제각각이긴 하니까. 다만 여기서 말하는 중세는 근세랑 구분해야할 것 같긴 함.
  • [레벨:23]겨울배 2020.12.22 00:00
    얘는 그냥 기준이 20세기 21세기인거 아님?
  • [레벨:11]호박죽코박죽 2020.12.22 00:27
    저 책 읽어볼만함? 재밌나요
    서양중세문명
  • [레벨:25]황금200톤 2020.12.22 00:42
    그냥 현대 이전은 어디가나 상류층을 제외하곤 모두에게 헬이 아니었을까?
  • [레벨:9]미분가능 2020.12.22 01:32
    위쳐3에서 벨렌 들어가자마자 중세뽕 다빠짐 지옥도 그런 생지옥이 없다
  • [레벨:18]아나킨스카이워커 2020.12.22 15:11
    미분가능 ㄹㅇ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날씨극혐
  • [레벨:3]라라랜들 2020.12.22 01:36
    10년전쯤 읽어서 가물가물하고 정확하진 않지만 현대 최빈국인 소말리아의 1인당 gdp보다 산업혁명 초기 영국 1인당 gdp가 더 낮았다는 글을 본거같은데
  • [레벨:23]유로파리그 2020.12.22 03:17
    라라랜들 그건 아닐듯.. 소말리아가 300달러로 추산되고 있는데..

    그때 영국이면 800달러 정돈 되지싶음
  • [레벨:2]지하철치한닮음 2020.12.22 02:18
    중세 ㅇㄷ
  • [레벨:23]모히또바 2020.12.22 07:36
    중세 ㅇㄷ
  • [레벨:7]풍월1 2020.12.22 07:41
    중세 서양이 끔찍했었던건 다 이유가 있음.
    그 시절 밀 농사 특유의 낮은 생산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광작이 필요했고, 한가구당 무려 30에이커가 넘는 거대한 토지를 경작했음. 저렇게 넓은 토지에서 생산해도 부양력이 떨어져서 툭하면 기근에 전염병에 굶어 죽기 일수였음. 알곡 한 알당 기대 수확률이 4~8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노동대비 생존에 필요한 곡물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함. 중세 서양국가들 인구가 백만단위인 이유가 있는 거.
    이게 그나마 저지대지역에서 노퍽 농법이 개발되고 나서야 생산량이 늘어나 먹고살만해진거임
  • [레벨:6]xenopon 2020.12.24 16:39
    풍월1 한가구당 30에이커는 중세 초기 아니냐.
    흑사병 이전 14세기초 잉글랜드 남부 소작농 가구당 경작지가 평균 12에이커였는데
  • [레벨:7]풍월1 2020.12.25 05:42
    xenopon 둠스데이 보고 말하시는거?
    중세때 경작지 넓이는 계속 왔다갔다하지만 1가구당 12에이커까지 떨어진 기억이 없는 거 같은데. 오히려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 [레벨:6]xenopon 2020.12.25 10:45
    풍월1 The better-off sections of village society were not divided from their poorer neighbours by an enormous gulf: in many villages in c.1300 the best-endowed tenants had only a 15- or 20-acre holding. It therefore seems unlikely that the elite of the village ran things entirely for their own benefit, as they did not form an interest group separate from the other villagers.

    -Christopher Dyer, 'Everyday Life in Medieval England'

    ---

    The economic standing of our rebels is best indicated by the size of their holdings, of which we are given some indication in thirty-six cases.
    Of these, fifteen had holdings of 14 acres or more, of whom only two held more than 32 acres;
    nine held between 7 and 12 acres;
    and twelve were smallholders with 5 acres or less.

    Rebels with smallholdings, and some sizeable amounts of land, would have had alternative sources of income from wage work or from the pursuit of crafts or trades.
    John Phelipp of Thorrington (Essex) was employed in fencing a park for 36 days soon after the revolt.
    At least three of the rebels from his village cut wood for sale.
    Elsewhere individual rebels are known to have sold fish, and three are recorded as traders, as a fellmonger, draper and chandler.
    There were two carpenters, a miller, a cook and a barber.

    -Christopher Dyer, 'The rising of 1381 in Suffolk: its origins and participants'
  • [레벨:6]xenopon 2020.12.25 11:13
    xenopon 1300년경 잉글랜드 농촌에서 15~20에이커를 보유한 소작농은 마을 지도층(십호반장이나 장원법정 배심원으로 자주 선출되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집안)에 속했음.

    법정 기록에 재산 수준이 언급된 1381년 와트타일러의 난의 반란군 기소 사례 36건 중
    경작지 32에이커 이상 2명,
    14~32에이커 13명,
    7~12에이커 9명,
    5에이커 이하 12명.
    소규모 소작인들과 중간급 소작인들은 농사 외에도 임금노동, 수공업, 행상업 등 다른 일에서 수입을 충당했음.
    [댓글이 수정되었습니다: 2020-12-25 11:40:47]
  • [레벨:22]121212 2020.12.22 15:43
    현대에도 후진국 빈민들은 지옥 속에서 살고 있지
  • [레벨:21]훔바형사실좋아해 2020.12.23 12:01
    뭔 일이 있었는진 모르겠는데 글이 왜 이렇게 날이 서 있냐 나도 유럽사 좋아해서 니 글들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 편은 좀 아쉽네
  • [레벨:6]xenopon 2020.12.24 17:00
    주민 3000명 이상의 큰 도시들은 자급자족을 기대할 수 없었고, 상당히 먼 거리에서 가져온 식량에 의존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도시화가 심한 지역인 플랑드르는 지역의 경계를 훨씬 넘어 프랑스 북부, 에노, 브라반트, 라인란트에서의 도로와 강을 통한 식량 공급에 의존하고 있었다.
    파리는 특권을 받은 상인조합을 통해 식량을 공급했는데, 이들은 프랑스 국왕에게 우아즈 강의 상당부분과 노정에서 바다까지 센 강 전체의 물동량의 통제권을 인정받았다.
    -jonathan sumption, hundred years war

    지역이나 시대마다 다르겠지만 '중세' 전체가 로마시대보다 행정체계와 물자 수송량이 떨어졌다는 건 과장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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