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9qdcmQWsAAtjSH.jpg [타임즈] 9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16살에 두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18살에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일하던 소년이 4년 후 아스톤 빌라의 클럽 레코드가 된 이야기](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90623/340354/188182561/1926448872/f5cdb071abfcfeb387b2a77f60d1c026.jpg)
https://www.thetimes.co.uk/article/how-wesley-moraes-arrived-at-aston-villa-via-brazil-slovakia-and-belgium-6pcslldbn
웨슬레이 모라에스는 7년전까지 제대로 된 축구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브라질에서 빈곤에 허덕이던 그가 아스톤 빌라의 클럽 레코드가 되기까지의 여정에 있어 가장 덜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빌라는 £22m에 브뤼헤와 합의했으며 2011년 대런 벤트를 영입할 때 사용한 £18m의 기록을 깨게 되었다.
모라에스의 삶에 대해 간략히 적으면 9살에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사망했고 15살에는 계획에 없던 아들이 생겼으며 1년 후에는 딸도 생겼다. 2년 후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달 £150을 받으며 공장 조립라인에서 일을 했다. 그는 15~16살부터 축구를 진지하게 시작했으며 여러번의 시도 끝에 트렌친(슬로바키아)을 거쳐 브뤼헤(벨기에)로 가게 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슬픈 순간들이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 속에 들어있다. 그의 아버지인 파울로가 목에 그려져 있고 그의 왼쪽 팔에도 아버지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강해지고 역경을 극복하려는 그의 바람을 상징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축구를 가르쳤다.
또 다른 문신은 여동생의 아들 구스타보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의 다른 팔에는 그의 어머니가 딸에게 지어준 이름에서 따온 성모 마리아의 문신과 포르투갈어로 신앙의 단어인 Fé가 그려져 있다. 이것들은 어머니가 그에게 심어준 종교적 가치에 대한 것이다. 그의 오른쪽 정강이에는 날개가 달린 축구공 문신이 있다.
현재 22세인 모라에스가 살아온 삶은 그가 왜 아버지 같은 존재를 찾아왔는지를 설명해주며, 그의 커리어에 있어 올바른 길을 가도록 하기 위해 많은 관심과 주의가 필요했는지를 보여준다. 2016년 브뤼헤에 입단했을 당시 그는 밤문화에 눈을 떴다. 그의 생활방식은 좋지 않았고 그의 식단은 너무 많은 설탕이 들어있었다. 모라에스는 슈퍼마켓으로 끌려가 그가 더 많은 샐러드와 과일, 요거트를 사야 하며 테이크아웃 음식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라에스는 감독에게 그가 요리했던 음식의 사진과 결과(더 날씬해지고, 더 건강해지고, 경기장에서 더 좋아진 모습)를 번역해 보내곤 했다. 드비 리고 감독은 "그의 오후 간식에는 비타민이 부족하고 가끔 아침을 거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브뤼헤 이적 초기에 그는 팔꿈치로 상대를 때리고 팔을 휘두른 행위로 퇴장을 받았다. 브뤼헤는 그의 공격성을 올바른 방식으로 풀려고 했고, 그의 반응을 억제하고 더 차분하게 만들었다.
앤트워프와의 경기에서 모라에스는 대응하지 말라는 것을 본인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부상이 아닌데도 손에 테이프를 매고 경기를 했다. 그는 6피트 3인치임에도 불구하고 꽤 빠르지만 공중볼에는 서툰 모습을 보여주었다. 브뤼헤는 모라에스를 수석코치 필립 클레멘트와 함께 공중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모라에스는 15살에 아버지가 되었다. 1년 후에는 딸 마리아 에두아르다가 태어났다. 그 당시 프로 축구선수가 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브라질 온갖 곳을 찾아다니며 트라이얼에 참가했지만 그를 받아주는 구단은 없었다. 결국 바하이아 주 이타부나에 본부를 두고 있는 6부리그팀 이타부나 에스포르테 클루브가 그를 데려갔고,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프랑스의 낭시에서 입단테스트를 진행할만큼 충분히 잘했다. 하지만 테스트는 아무 성과 없이 끝났고 그는 공장일을 하기 위해 브라질로 돌아왔다.
그 후 그의 두 번째 아버지가 된 에이전트 파울로 네미에 의해 다시 한번 기회가 왔다. 네미는 슬로바키아의 트렌친에게 모라에스를 제안했고 트렌친은 모라에스와 U19팀 계약을 했다. 트렌친은 중국, 네덜란드, 나이지리아, 세르비아 선수들로 구성된 범세계적인 아카데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를 클래식한 9번 스트라이커로 만들기를 원했다.
트렌친은 체코 국경 부근인 브라티슬라바에서 약 120km 떨어진 슬로바키아 서부에 약 5만5000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다. 웨슬레이는 브라질리언 팀동료 라몽과 하이로 다 실바에게 새로운 환경 적응에 대한 도움을 받았고, 이전에 아스널에서 2년을 보내고 지금은 안더레흐트에서 뛰고 있는 웨일스의 수비수 제임스 로렌스에게 영어를 배웠다. 웨슬레이를 브뤼헤에게 €1m에 팔았던 트렌친은 최근 몇 년간 벨기에 클럽들의 유소년 발굴소였다. 트렌친은 레온 베일리, 사무엘 칼루, 제임스 로렌스와 같은 선수들을 키웠다.
모라에스는 그의 고향 도시에 있는 두개의 아파트를 구매해 브라질에 있는 가족들을 지원하고 있다. 모라에스의 어린 형제들은 감사의 의미로 그를 Pai(포르투갈어로 아버지)라고 부른다. 브뤼헤의 멘탈 코치 루디 헤일렌은 안더레흐트와의 경기 전 선수들의 가족들로부터 영상을 받아 보여주었다. 모라에스는 그의 어머니의 말에 눈물을 흘렸다.
드비 리고(감독) : "나는 작은 부엌 테이블에 모여있는 그의 가족과 친구들의 사진을 봤다. 25명의 사람들이 그에게 의지하고 있다. 때때로 우리는 그러한 압박을 과소평가한다. 그는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길 원하며 서포터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할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만약 누군가 그에게 잘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볼 것이다."
* 추천 한번씩 부탁드립니다.
자식이야 지가 낳고 싶어서 낳은건데 무슨 역경처럼 이야기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