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목상대. 더할 나위없는 표현이다.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아스날 전을 소화했을 당시 파비뉴는 리버풀의 미드필더로서 뼈저린 경험을 체험했다. 작년 11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1:1로 비긴 경기에서 파비뉴는 프리미어리그의 스피드와 강도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 경기는 모나코에서 43m파운드에 리버풀로 이적했던 한 신입생의 2번째 리그 출전 경기였고, 그 신입생은 적응하는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 밑으로 처지면서 과한 볼터치와 볼 소유에 지나치게 시간을 허비하는 파비뉴를 아스날은 무력화시켜버렸다.
"프리미어리그의 스피드를 뼈저리게 깨달은 밤이었습니다. 해야하는 게 뭔지도 깨달았구요." 파비뉴가 했던 말이다.
9개월이 흐른 뒤 안필드에서 아스날을 3:1로 제압한 토요일, 파비뉴는 세간의 시선을 사로잡도록 성장한 면모를 드러냈다. 우나이 에메리가 이끄는 아스날은 파비뉴를 무력화시켜버리지 못했다.
조엘 마팁과 모하메드 살라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리버풀의 중원을 무게추를 실어주면서 리버풀이 전방으로 치고 나갈 수 있도록 한 이는 자기 자신의 역할을 오롯이 수행한 파비뉴였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볼 소유권을 계속 획득한 파비뉴의 지능적인 볼 전개에 위르겐 클롭 체제의 선수들이 정렬되었다. 파비뉴는 패스 성공률 93%와 경합에서 67%의 승률을 보였고, 어시스트를 포함한 4차례의 키패스를 기록했다.
파비뉴의 경기력은 일회성이 아닌 2019년 한해 꾸준히 성장하여 초반 삐걱거리던 행보를 이제 과거의 유산으로 남겨놓은 파비뉴가 보여준 결과물이었다. 준수한 활약을 선보인 파비뉴는 클롭의 신임을 확실하게 받아낸 것이다.
2018년 자유계약으로 유벤투스로 이적한 엠레 찬의 대체자로 영입했던 파비뉴는 자기 자신이 찬보다 더 역동적이면서 인상깊은 미드필더란 것을 스스로 입증해보였다.
조르제 멘데스를 에이전트로 둔 파비뉴에게 리버풀이 관심을 보인 건 2012-13시즌, 그러니까 파비뉴가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의 히우 아브 FC(Rio Ave FC)에서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로 임대되었던 10대 시절일 때다. 리버풀의 영입부는 당시 라이트백이었던 파비뉴의 성장세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상파울루 주 캄파니스에서 태어난 파비뉴는 플루미넨시 FC의 아카데미를 월반하고 불과 18세의 나이에 유럽으로 건너왔다. 모나코로 이적하기 전 주제 무리뉴 감독 체제의 레알 마드리드 1군에선 1경기 출전에 그쳤다. 레오나르도 자르딤 감독은 파비뉴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변시켰고, 파비뉴는 킬리앙 음바페, 베르나르두 실바, 벤자민 멘디와 한솥밥을 먹으며 16-17시즌 리그 1 우승 및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에 공헌했다.
파비뉴에 대한 스카우팅 보고서는 날로 축적되가는 가운데, 파비뉴가 경기장 안팎으로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선수라는 점을 클롭에게 주지시키는 데는 성격 보고서 역시 상당한 지분을 차지했다. 파비뉴의 피지컬적인 요소는 파비뉴와 마찬가지로 리버풀이 검토 대상 목록에 올려놓았던 루카스 토레이라와 조르지뉴 대신 파비뉴가 더 적절한 선택지라는 결정을 내리는데 일조했다.
리버풀의 마이클 에드워즈 단장과 데이브 팔로우즈 인사관리팀장은 거래를 성사시키고자 유별나게 전력을 다했다. 키예프에서 열린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끝나고 48시간 뒤, 파비뉴의 영입 소식은 리버풀 팬들 사이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반가운 그것이었다.
클롭은 파비뉴가 스피드에 눈을 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모나코와 리버풀 스타일이 차이가 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파비뉴가 적응기 없이 종횡무진하리라 생각하는 건 앞뒤가 안맞기도 했다.
프랑스에선 팀원과 함께 홀딩 미드필더로 기용되곤 했던 파비뉴에게 커버 목적으로 활동량을 왕성하게 가져갈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파비뉴가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10월 후반까지 기다렸던 이유는 전술 및 피지컬적으로 과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 레베카, 같은 국적의 팀원인 호베르투 피르미누, 알리송이 힘겨웠던 나날에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었다. 파비뉴가 리버풀과 계약을 체결할 당시 파비뉴를 설득하는데 피르미누의 추천이 한몫하기도 했다. "감독님이 요구하시는게 되게 많긴 한데 그게 님한테 도움이 됨ㅋㅋ" 피르미누가 파비뉴에게 했던 말이다.
파비뉴는 활동량을 가져가는데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 정도로 체력과 몸상태를 키워나가기 위한 코어 강화 프로그램을 건네 받았다. 파비뉴가 안정세에 접어들고 핵심적인 변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펩 레인더스 코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제 막 영어 교습을 시작한 파비뉴와 달리 네덜란드 국적의 레인더스 코치는 FC 포르투에서 커리어를 쌓은 이후 포르투갈어에도 능숙했던 것이다.
파비뉴는 그때 일을 회상했다. "새로운 나라와 리그에서 새로운 훈련 방법론을 터득하고 있습니다. 제가 했던 거랑 완전히 달라요. 꾸준하게 해야될 거 같네요. 여기서 오래 전부터 해왔던 선수들과 코치진들에게 계속 배우고 싶습니다.
여기(프리미어리그)에선 공이 발에 붙으면 반응할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 않습니다. 늘 뒤에 1-2명이 달라붙어요. 프랑스에선 걍 전환만 하면 되거든요. 여기선 반응을 정말 빨리 해야 합니다."
마침내 이를 깨우치는데 성공한 파비뉴는 지난 시즌 후반기,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다. 챔피언스리그 4강 바르셀로나 전은 그중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던 경기였다. 파비뉴가 포백 앞에 자리하면서 클롭은 4-2-3-1보다 본인이 선호하는 포메이션인 4-3-3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4-3-3에서 조던 헨더슨은 더 앞선에서 자유로워졌고, 클롭은 파비뉴가 중원에 가져온 보따리에 감탄을 자아냈다.
레인더스 코치는 파비뉴를 리버풀 공격의 "정돈된 혼돈 속에 피어난 등대"라고 표현했다. 사디오 마네, 피르미누, 모하메드 살라가 1선에서 폭풍처럼휘몰아치긴 하지만, 파비뉴가 저 셋을 통솔한다는 것이다. 레인더스는 "파비뉴의 타이밍, 시야, 침착성은 리버풀 중원에겐 중요한 요소"라고 밝혔다.
중원에서 무게추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파비뉴는 토요일 아스날 전에서 그라니트 쟈카가 상쇄시키기 전에 통제권을 가져오면서 재빨리 분위기를 조성했고, 세번째 골에서도 파비뉴의 활약은 무척이나 강렬했다. 아놀드가 터치라인 근처에서 압박을 받자 파비뉴가 패스를 받기 위해 내려왔고, 받자마자 곧바로 한번에 살라에게 연결했다.
토레이라의 만회골이 터졌을 때 파비뉴의 반응은 분명한 메시지를 자아냈다. 질색하는 모습으로 팔을 걷어붙였고,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클린시트를 원했던 파비뉴는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이었다.
파비뉴가 다음달 A매치 기간에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도 놀랄 필요가 없다. 10년 전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이후 전문 홀딩 미드필더가 없었던 리버풀은 파비뉴라는 핵심 선수를 보유하게 되었다.
토요일 저녁 안필드 언론 인터뷰를 정중하게 거절한 파비뉴는 이젠 농담까지 하면서 지나친다. "영어 아직 배우고 있는데요, 영어 쌤이 별로에요."
안필드 안에서가 아닌 밖에서 해야되는 숙제가 남아 있었던 모양인 파비뉴의 괄목상대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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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heathletic.co.uk/1155118/2019/08/26/fabinhos-sensational-display-against-arsenal-shows-how-far-the-brazil-midfielder-has-come/